감정적반응과 실무적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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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학생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경제압력을 순탄하면서 4일 한 때 조선호텔에 있는 미상공회의소 서울 사무실을 점거했었다.
학생들의 행위는 과격하고 반질서에 의한 감정폭발행위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이 최근 숨가쁘게 죄어오는 미국의 한국시장개방 압력과 한국상품에 대한 잇단 덤핑 판정등 우리국익을 위협하는 현실적·가시적인 문제들을 들고 나온 점에서 특이하다.
이제 한미관계는 옛날 같지 않다. 안보면에서는 양국의 국익이 일치되고 있으나 경제면에서는 냉정한 「기브 앤드 테이크」관계에 있다. 과거의 혈맹관계가 타산적인 국익관계로 대체된 것이다.
이처럼 상충되는 한미관계의 이중논리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것에서 양국 정책당국이 문제를 풀어가야한다.
문제의 시원은 미국의 자국중심의 강대국논리에서 발단됐다. 미국의 경제압력은 아직은 우리 경제력으로 감당해내기 어려울 정도다.
미국이 국력에 상응하는 경제관계의 설정에 보다 진지한 자세를 보이지 않는 한 이런 시비의 관계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의 대응태세다. 국가관계는 전적으로 정부차원에서 해결할 책임이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관계장관들이 자주 미국을 드나들어 일이 잘 돼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실망적인 것 들 뿐이었다. 한국상품에 대한 미국의 완고한 보호주의정책이나 우리 시장의 개방요구, 불리한 항공협정의 체결 및 88올림픽의 TV중계료 협상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국익에 썩 보탬이 되지 않는 쪽이었다.
자유중국의 경우 이미 지난 여름「기브 앤드 테이크」원칙에 따라 미국에 대해 줄만한 것은 양보하고 큰 것은 유보 또는 받아내는 방향으로 능숙한 대응을 했다.
일본도 엔화의 인상유도로 무역전반에 깊은 영향을 주는 근본적인 대응과 무마를 통해서 미국과의 무역마찰을 줄이려 노력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그동안 확고한 대응이나 능동적인 로비 활동등에서 좀 미흡했거나 우물쭈물해 온 인상이다.
그런 과정에 학생들의 서울주재미상의 점거사태가 일어났다.
사실 대미통상 문제는 감정적 차원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감정 촉발로 얻어낼 것은 반미무드뿐이다. 이것을 바라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결국 오늘의 한미무역 마찰은 상사 실무자들이 비즈니스 라이즈(실무적)하게 처리해 원만히 타결을 보아야 할 문제다.,
이 점에선 두 정부의 신뢰와 성실성이 요구된다. 이런 문제를 실무적으로 풀지 않고, 공연히 정치적, 아니면 감정으로 점근하려고하면 오히려 시간만 놓치고 실리도 없다. 바로 그 교훈을 대만이나 일본에서 보고 있지 않은가.
매사에서 그렇지만 「우물쭈물」처럼 문제해결의 소극적인 방식은 없다. 더구나 촌각을 다투는 「생존경재」시대에 우리는 엄연히 있는 현안문제들을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물어나가 국민감정이 앞설 소지와 여운읕 남기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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