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바캉스] "집 나가면 고생" … 방콕族 2박3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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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바다로, 산으로 혹은 비행기 타고 해외로 떠나는 휴가 때 집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방콕족(族)'이라 부른다. 그러나 '방콕'에도 나름대로 보람과 묘미가 있다. 어설픈 패키지 여행이나 인파로 붐비는 해수욕장에서 치이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 첫째날 : 아는 만큼 즐겁다

진짜 방콕족은 방에 콕 박혀 지내며 남을 부러워하는 패배주의자가 아니라 바쁜 일상 탓에 그냥 지나쳤던 주변에서 즐거움을 찾는 창의적인 사람들이다. 스치는 순간을 낚아채 즐기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 평소에 관심만 가졌던 고궁.미술관 등 놀거리들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수집한다. 휴가이니만큼 '빈둥 빈둥'과 '어슬렁 어슬렁'을 적절히 버무리며 여유를 즐겨야 한다.

'타로카드'를 이용해 다음 날의 일진을 점쳐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타로카드는 트럼프의 원형. 고전적인 모양부터 만화 스타일.성인용 등 수백종을 망라한다. 그림이 마음에 드는 카드를 고르면 된다. 점치는 방법은 간단히 오각형의 별 모양으로 하는 기초적인 방법부터 전문적인 공부를 필요로 하는 수준까지 다양하다.

'인터하비(www.interhobby.net)'에서는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카드를 판매하고 있다. 중세풍(?)으로 생긴 사장님이 친절하게 설명하니 직접 찾아가면 더 재미있게 타로의 세계로 입문할 수 있다. 타로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인터넷 동호회를 뒤져보자!

*** 둘째날 : 보물은 가까이에

쫓길 일정도 없으니 느지막하게 일어나 밖으로 나선다. 수도권에 살고 있다면 아이와 함께 고궁을 방문해 공주님. 왕자님 이야기를 해주며 수문장 교대식 등의 행사를 감상하는 건 어떨까. 고궁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서 전날 수집한 정보와 책을 활용한다. '우리궁궐지킴이(www.palace.or.kr)' 사이트가 큰 도움이 될 터이니 미리 둘러볼 것. 아이가 "저게 뭐예요?"라고 물어보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글쎄다…"라고 대답하기엔 민망하지 않은가.

고궁이 지루해질 쯤이면 미술관이나 갤러리로 옮긴다. 덕수궁 주변의 갤러리나 경복궁 옆 삼청동에 있는 단아한 미술관으로 향한다. 미술관을 찾을 때는 무엇을 꼭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부터 떨쳐버리자. 그냥 나의 방식 그대로 작품을 대하고 느끼면 그것이 예술 감상이다. 미술관에서 주의할 것은 사진촬영이 안된다는 것과 아이들이 떠드는 장소가 아니라는 정도다. 주변을 방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것. 김달진씨가 운영하는 사이트(www.daljin.com)와 그곳에서 발행되는 '서울아트가이드'는 전시미술에 관한 다이제스트이니 참고하길.

*** 셋째날 : 가족과 게임을

방안에서 부스스한 머리로 가로누워 TV를 보거나 만화책을 탐독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왕이면 가족과 함께 즐기는 놀이를 시도해 보자. '지그소 퍼즐'과 '보드 게임'을 추천한다. 지그소 퍼즐은 엄지손톱만한 수백개의 조각을 맞추는 인내력 게임. 만드는 과정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조각들을 짜맞춰 완성품이 나왔을 때의 기쁨은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그것과 맞먹는다. 완성된 퍼즐 뒤에 가족 모두 서명을 하고 액자로 만들면 멋진 추억이 담긴 장식품이 된다. 보드 게임은 카드와 주사위, 기타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 즐기는 게임이다. 게임 도구를 사서 할 수도 있지만 보드 게임방에 가면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어 편리하다. 보드방은 밝고 깔끔한 분위기라 아이들과 같이 가도 전혀 부담이 없다. 떠든다고 옆에서 눈치를 주지도 않는다.

친절한 도우미들이 늘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게임을 모른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 없다. 들어가서 1인당 한시간에 2천원 정도 내고 맘껏 즐기기만 하면 된다.(세상에 공짜는 없다. -_-) '페이퍼이야기'(www.paperiyagi.com)는 대표적인 보드 게임 체인점 중 하나. 보드방은 대학가 주변에 많다.

휴가를 이렇게 지내고 나면 검게 탄 피부보다 더 가치 있는 예술혼 가득한 마음과 가족 사랑을 얻게 될 것이다. 비용 절약이라는 뿌듯함은 보너스. 굳이 고생하며 먼길을 다닐 필요가 있을까.

이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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