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길 비켜라…버스가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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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죽기 실으면 비켜라』-.
버스가 도심을 질주한다. 차선도 마음대로, 속도도 제멋대로, 우르릉 내달리다 와지끈 섰다가 끼이익 끼여들어 부룽부룽 가로막는다. 온 길이 제 차지라는 듯 꽁지에 불단 황소처럼 내닫는 거리의 무법자.
『버스 운전사들은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라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아침·저녁 운전을 할 때마다 버스를 피하느라 가슴이 조마조마,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입니다. 알아서 피해 가는데도 중앙선까지 넘어 덤벼들지 않나, 아찔한 순간들이 한두 번이 아니예요.』
운전 경력 3년의 손수운전 회사원 김동렬씨(34·서울 봉천 1동)는 고개를 흔든다. 『경찰도 버스의 난폭 운전은 봐주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오래 전부터 횡포차량의 대명사가 된 시내버스의 난폭운전. 이제는 길들여야 한다는 것이 손수 운전자가 대다수가 된 거리의 공론으로 일고 있다.
『운전사만 나무라지 마십시오. 곳곳마다 길은 막히는데 회사측은 무리하게 운행 시간을 정해 놓고 닥달을 하지요. 얌전 운전을 무슨 수로 합니까.』
J여객 소속 운전사 김한성씨(58)의 하소연. 김씨는 배차 시간을 어겼다고 회사서 당장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으나 『회사에 눈치보이고 괜히 싫은 소리 듣는 것은 「기름밥」 30년에 죽기보다 싫다』고 했다.
서울 면목동∼경기도 과천노선. 경찰이 측정해 본 안전 운행 시간은 1백 13분.
그러나 이 구간 운행 H버스 회사가 운전사들에게 요구하는 운행 시간은 1백분. 『조금 늦었다 간 종점에서 소변볼 틈도 없이 다음 차를 타야합니다.』 운전사 이명호씨(45)의 말.
대치동∼신내동 구간도 경찰이 보는 적정 시간은 86분. 버스 회사에선 77분내 운행을 지시하고 있다.
지난 5월 12일 상오 8시 40분 서울 논현동 영동백화점 앞 버스 정류장.
서울여객 소속 서울 5 사 4359호 시내버스(운전사 김광수·36)가 몸을 털듯 승객들을 내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문을 닫지도 않고 그대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차밖에 고꾸라진 임명련씨(41·여·서울 양재동). 운전사 김씨와 승객들이 급히 뛰어내려 임씨를 안아 올렸으나 임씨는 뇌진탕으로 이미 숨진 뒤였다. 운행 시간에 쫓겨 승객 중 마지막으로 내리려던 임씨를 돌아볼 사이도 없이 차를 모아 대다가 화를 불러들인 개문발차 사고의 예.
지방 국도에서는 또 시외버스가 무법자로 날뛴다.
지난 19일 밤 10시 40분 남태령 고갯길. 부강교통 소속 경기 5 라 6509호 시외버스(운전사 윤종태·36)와 검은 승용차 1대가 서로 속도 경쟁을 벌이듯 비가 쏟아지는 어둠 속을 불과 10여m쯤의 간격을 두고 무섭게 질주하고 있었다.
앞을 달리던 승용차가 빗길에 미끄러져 흔들거리면서 멈칫 브레이크를 밟자 버스 운전사 윤씨는 엉겁결에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틀었다.
그러나 역부족. 버스는 오른쪽 길가로 미끄러지면서 나뒹굴고야 말았다. 승객 15명 중경상.
일반 국도 제한 속도 70∼80km 시속을 지키는 시외버스는 거의 없다. 90∼1백km가 예사.
덩치를 믿고 시간에 쫓기며 시작된 난폭 운전이 30여년 고질로 깊어 가며 버스 운전사들의 「제2의 천성」으로 바뀐 인상조차 없지 않다.
운전사들의 과로도 사고의 큰 원인.
지난 6월 20일 상오 11시. 서울 신천동 잠실대교 남쪽 입구의 병목 지점.
잠실에서 자양동쪽으로 달리던 서울 승합 소속 서울 5 사 4191호 시내버스(운전사 강대규·40)가 갑자기 대교 입구 아름드리 플라타너스를 들이받고 공중에 붕 떴다.
『꽝』 천둥소리와 함께 버스는 8.5m 다리 아래로 처박혔다. 버스 앞부분이 휴지처럼 구겨지고 l명 사망에 승객 45명 전원 중경상. 무리한 배차 운행에 휴식도 없이 차를 몰던 운전사 강씨의 깜박한 순간의 졸음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운전사가 조는 위험이 서울 시내버스에서는 결코 드물지만은 않다.
올 들어 지난 6월까지 전국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6만 2천 1백 10건 중 버스가 일으킨 교통사고는 1만 3천 2백 6건. 전국 자동차 댓수 중 버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11.6%에 불과한데도 버스의 교통 사고는 전체 사고의 21.3%나 돼 사고를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 「교통사고 1등국」의 불명예에 버스가 1위로 기여(?)한 셈이다.
『버스의 고질적인 난폭 운행을 막으려면 ▲도로 여건 개선을 위한 장·단기 계획 추진 ▲여유 있는 운행·배차 시간 책정 ▲예비 차제 실시 ▲버스 전용 노선의 검진적 실시 ▲현재의 평균 40∼50km이상 되는 긴 노선을 30km이하로 줄이는 등의 근본적이면서도 본격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대한교통학회장 이일병씨의 말.
일본의 경우 버스 노선을 30km 이하로 직선화해 지하철과 전철이 못미치는 구간만을 운행토록 해 버스의 난폭 운전을 없앴다.

<고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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