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보호주의 선풍 진원은 세갈래|행정부·의회·업계가 이익경쟁|-잇단 대한 통상보복조치…미국의 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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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으로부터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는 대한통상조치들을 보면 마치 한국수출산업을 도마위에 놓고 난도질을 하려 드는 듯한 감마저 든다.
행정부도 통상법 301조라는 흉기를 들고 두 번이나 한국을 강타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앨범에까지 64%라는 엄청난 덤핑 마진율 판정을 내렸다. 거기다가 이제는 미국산 쇠고기, 포도주등에 대한 시장개방까지 요구하고있다.
또 의회는 의회대로 신발섬유류에 대한 보호주의 법안을 통과시키고 있고 업계는 미국 영화에 시장을 완전개방하지 않을 경우 한국상품에 대한 보복조치를 취하라는 요구를 하고있다.
이와같은「소나기식 압력」은 당하는 폭에서 보면 부당하기 짝이 없는 것이고 크나큰 좌절감을 자아내게 한 근원인이기도 하지만 이미 미국측 부당성에 대해 항변하는 것 만으로는 사태를 호전시킬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한국이 해야할 시급한 과제는 감정을 억누르고 미국에서 불어오는 보호주의 선풍의 진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 일것 같다. 그와 같은 진상 파악이 앞으로의 모든대 책의 출발점이 되어야한다.
미국 통상압력의 진원은 행정부 의회 업계의 세 갈래다. 얼핏 이 세갈래를 하나로 연결된 음모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처럼 다양화된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의회는 86년에 있을 중간선거를 앞두고 선거구민의 보호주의 성향을 오히려 과장해서 입법활동에 표출시키고 있다.
보호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의 경우 다음 선거의주 이슈로서 외국상품의 규제를 잡고 있다.
이에 대해 행정부는「레이건」대통령의 자유무역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보호주의 보다는 외국시장의 개방을 통해 미국이 안고 있는 무역적자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행정부는 따라서 통상법 301조와 같은 보복조치를 취함으로써 의회의 보호주의 움직임을 누그려뜨리려 하고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행정부와 의회의 통상규제 줄다리기를 이용해 자기이익을 취하고 있는 것이 업계다. 한국의 영화시장개방을 노리고 301조 제소를 한 미국영화협회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 세갈래의 압력은 공모는 커녕 서로 견제하는 관계에서 나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부는 늘 의회와 업계를 무마할 수 있도록「성의」를 보이라고 한국등 통상국들에 설득해 왔다.
어느모로 보나 한국 보다더 통상규제의 대상이 될법한 일본과 대만은 국내 입법조처와 여러가지 제스처를 써서 그런「성의」를 보인 결과 보복에서 빠진 것이다.
최근 유엔을 방문한「나까소네」일본수상은 한술 더 떠 일본을 포함한 통상국에 대해 미국이「불공정 거래」조치를 취한 것은『현명했다』고까지 찬양했다.
일본이나 대만은 미국의 통상압력을 일찍부터 하나의「대세」로 판단하고 이 흐름에 순응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보복조치의 예봉을 피한 것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입법이건 개방조치건 표면에 나타난「성의」표시가 없었기 때문에 연타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이 해야할 시급한 일은 급류에 맞서다가 쓰러지기 보다는 급류를 타면서 최선의 활로를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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