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은 변화무쌍한 것, 판 흔들러 갑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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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호 24면

이태원 경리단길 뒷골목 ‘장진우 거리’로 유명한 장진우(30)씨가 국립극장의 여름 축제인 ‘여우락 페스티벌’(7월 8~30일)에 참여한다. ‘디퍼런트 앵글(Different Angles)’을 테마로 배우부터 클래식 음악가까지 다양한 영역의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워 한국 음악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올해 ‘여우락’ 라인업 중에서도 가장 의외의 인물이자 상징적인 존재다.


장씨는 전직 포토그래퍼이자 20여 개의 식당을 오픈한 스타 셰프·창업 컨설턴트·공간 디자이너 등으로 종횡무진 활약중이지만, 사실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에서 피리를 전공하며 각종 경연대회를 휩쓴 ‘국악 신동’ 출신이다. 그런데 이미 오래전 국악계를 떠났던 그가 어떤 무대를 선보인다는 걸까.


바로 ‘동해안별신굿’이다. 그가 연출하는 ‘장진우의 동산’(7월 12~13일 국립극장 KB하늘극장)은 무당 김동언·김정희를 비롯해 대중음악 프로듀서 준백·가수 선우정아·랩퍼 넉살·무용수 최수진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 아티스트들을 불러들인다. 하지만 이들이 한 데 모여 뭘 보여줄지는 영 감이 안 온다. 분명한 건 “판을 흔들어 보겠다”는 장씨의 당찬 포부가 예사롭지 않다는 거다.

“강수가 아니라 묘수를 두러 왔어요. 판이 좀 흔들려야 하지 않나는 생각으로. 뾰족한 방법은 없어요. 그저 즐겁고, 이상하다고 표현될 만한 공연을 하고 싶어요.”


장씨는 국립극장과 인연이 깊다. 학생 시절 공연 도우미를 하느라 국립극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별오름극장에서 귀신 나온다는 전설도 안다”고 했다. 그간 여우락 페스티벌도 꾸준히 즐겨왔다. 다양한 사업을 벌이느라 분주한 와중에 국립극장 측의 참여 제안을 수락한 것도 국악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하기는 싫은데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시대는 달라졌는데, 23년 전 제가 처음 국악을 할 때랑 판은 여전히 똑같거든요. 새로운 관객층 유도에 대해 깊은 고민도 하지 않고, 어떤 명분으로 누굴 위해 공연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판이 너무 고요한 거죠. 누가 돌이라도 던져야 울림이 생길 것 같아서 퐁당퐁당 돌 던지러 갑니다.”


그럼 왜 동해안별신굿일까. 포항·영덕·기장 등 동해안별신굿이 행해지는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진정한 축제인 ‘굿’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라붙는 것이 늘 안타까웠단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공연예술인데 왜 모르지 싶어요. 무당이 선 자리가 무대고, 꽃과 장식들이 미장센이라 생각해요. 굿판이라기보다 무대에서 시간과 소리, 모든 걸 연출하는 놀라운 예술이 굿이거든요.”


그는 자신이 이미 공인된 공연기획자라며 “요식업자가 유명해지더니 갑자기 국악공연을 하는 건 아니”라고 경계했다. 아티스트들도 무명시절부터 함께 해온 ‘절친’들이다. “그들이 유명하기 전부터 제가 모아서 공연을 했죠. 제 사진 스튜디오를 사랑방 삼아 ‘만남과 소통’을 주제로 자주 공연을 했어요. 그때도 유료 관객이 100명씩 왔는데, 이제 700명 정도는 오지 않을까요.”


동해안별신굿 중에서도 가무악과 연극적 요소까지 포함된 한바탕 ‘노름굿’을 벌일 이번 공연에 초대한 아티스트들은 그의 말마따나 “이 시대의 무당들”이다. “홍대 무당·힙합 무당·춤추는 무당이죠. 이들의 무대는 감동과 전율 그 자체 거든요. 진짜 무당의 축원을 이어받아 각자 자기만의 언어로 풀어내고, 마지막엔 관객까지 하나의 무당이 되어 훌훌 털고 나가도록 할 꺼예요. 요즘 다들 잠재적 정신병이 있잖아요. 여기서 잘 풀고 돌아가서 건강한 생활 하시라는 거죠.”


‘디퍼런트 앵글’이라지만 국악과 너무 상관없는 사람들 아니냐 물으니 “국악은 원래 변화무쌍한 것”이라 받아친다. “세종대왕이 악학궤범을 만들었지만 지금 국악은 전혀 달라요. 우리가 아는 민요는 다 1988년에 만들어낸 거고, 국악관현악도 고작 20여 년 역사죠. 장사익씨가 처음 나왔을 때 욕을 엄청 먹었지만 그 덕에 아리랑을 몇 천 번 더 들었을 걸요. 국악에도 스타가 탄생하고 그들만의 해석이 필요한데 다들 용기가 없어요. 이번에 같이하는 친구들도 사실 위축돼 있죠. 하지만 그 고민과 혼란 속에서 뭔가 나올 겁니다. 경계를 무너뜨려야 새로운 게 나오니까요.”


그는 이 작업이 ‘국악 대중화’와는 무관하다고 못박았다. 어디서나 전통음악은 대중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활성화되려면 교육부터 시작해야죠. 외국처럼 초?중학교에서 무조건 하나씩 국악기를 배우게 해야죠. 어릴 때부터 좋은 걸 알아야 대중화가 되는 거지, 아무 교육 없이 아티스트 책임으로 돌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굿은 놀라운 예술, 이상하고 재미있는 공연 만들 것” 그 자신도 “한국인으로서 한국 악기 하나 못 다루면 부끄럽다”는 생각에 피리를 전공했다. 하지만 결국 악기를 놓게 된 이유는 철학 없이 ‘음악쟁이’만 길러내는 국악계 구조에 염증을 느껴서다. 그런 애증 탓일까. 그는 변화의 노력 없이 안주에 급급하는 국악계를 향해 돌직구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초등학교 때부터 10년 동안 틀을 벗어나지 말라는 교육만 받았어요. 돌아보면 그런 선생님들은 어른이 아닌 거죠. 시대에 맞춰 변화시켜 가는 게 국악인이 할 일 아닌가요. 박범훈 산조나 김덕수 사물놀이도 80년대에 그분들이 만든 것이니, 우리 대에도 뭔가 해내야 하는 게 기본 소양인 거죠. 그게 없길래 그만뒀어요. 뭐 좀 하려면 교수가 왜 바꾸냐고 하고. 달달 외워서 시험보는 게 어째서 우리가 할 일인가요.”


그래서 적어도 이번만큼은 재밌는 공연으로 완성해 보여주겠다는 게 그의 각오다. “국악인들도 노력을 좀 했으면 싶다”는 것이다. “국악 공연은 한복 두루마기 하나 챙기면 끝이에요. 조명·의상·무대에 신경을 전혀 안 쓰죠. 관객이 재밌을까요. 분명히 재밌는 게 있는데 그걸 포장하는 마케팅 능력이 없는 거죠. 기획자를 따로 키워야 되는데, 국악 포기한 사람만 국악을 기획하니 안될 수밖에요. 반대로 홍대 인디 공연은 음악성이 없어도 잘 되죠. 열정적으로 마케팅을 하니까요.”


“이상하고 재밌는 공연을 만들겠다”는 그는 스스로도 이상하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점점 더 종잡을 수 없어졌다. 공연은 방대한 활동의 극히 일부일 뿐, ‘지역균형발전’을 외치며 여수에 다문화 이주민들을 위한 식당을 만들고, 광주 구도심을 살리고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 ‘쿡폴리’ 프로젝트도 진행중이다. 곧 제주도로 이주해 관광상품도 개발하겠단다. 이런 종횡무진이 결코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다 같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인데, 정치에는 전혀 뜻이 없단다.


“문화지식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고 싶어요. 그게 정의니까요. 누굴 존경하느냐고요? 세종대왕이요.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주고, 백성을 위해 소소한 정책을 다 만든 분이잖아요. 저도 남의 것 안 뺏어도 잘 살 수 있는 좋은 사회구조를 만들고 싶어 이런 일들을 해요. 공연도 마찬가지예요. 아티스트들에게 출연료를 많이 주고 계약서도 완벽하게 썼거든요. 이들이 또 이런 걸 유지하기 위해 고민을 시작하면 구조가 생길 겁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것. 그게 이 공연의 가장 큰 목표에요.”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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