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7)제84화 올림픽 반세기(6)|잇단 패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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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경기 첫날엔 육상의 투원반을 시작으로 농구·레슬링에 우리 선수가 출전했다. 우리 선수단의 막내둥이 홍일점으로 인기를 독차지해온 박봉식은 여자 투원반에서 33m80cm를 던져 하위권으로 탈락했다. 그나마 세 번 시도 중 두 번은 실격이어서 안타까움을 주었다.
농구는 첫날 벨기에를 맞아 29-27로 한 골 차의 승리를 거둔 뒤 분투 끝에 2승 2패로 본선(8강 전)에 오르는 전과를 거뒀다. 예선에서의 2패는 필리핀에 35-33, 중국에 49-48로 아깝게 무너진 것이었다.
농구 본선에서 우리 팀은 연패를 거듭, 결국 8위로 만족해야 했다.
레슬링은 첫날 황병관(웰터급), 김석영(라이트급)이 통쾌한 승리를 거두고 한상룡(밴텀급)이 부전승으로 2회전에 진출하는 등 순조로운 스타트를 보였다. 그러나 2일째 경기에서는 4개 체급에서 모두 패배하고 말았다.
이날 황병관은 심판에게 진 셈이었다. 황은 2회전에서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눌렀으나 심판의 판정은 2-1 패배였다. 당황한 것은 우리뿐이 아니었다. 관중석은 물론 외국 선수들까지 부당한 판정이라며 야유를 보내는 것이었다. 우리 선수단은 5파운드의 수수료를 내고 정식으로 항의를 제출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축구는 미지의 팀 멕시코와 첫 경기였다. 현지의 신문은 멕시코가 8-2로 우세하다고 평가하며 『한국이 멕시코를 이긴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대표로 출전했던 맹장 김용식을 비롯, 이유형·민병대·홍덕영 등으로 구성된 우리 팀은 그 기적을 이뤘다. 경기 결과는 전반 2-1,후반 3-2, 합계 5-3의 승리. 승리를 장담하던 멕시코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든 쾌승이었다.
영국인들의 축구 열기는 대단했다. 첫 승리를 거둔 뒤 우리 선수가 가는 곳마다 「코리아」가 화제에 올랐고 사인을 부탁하는 소년 소녀들도 부쩍 늘어났다.
사흘 뒤에 벌어진 2회전 상대는 이 대회 우승 팀 스웨덴. 베를린 올림픽에서 김용식이 낀 일본 팀에 패배했던 스웨덴은 경기를 앞두고 우리 팀 숙소를 몇 차례나 찾아와 전력 탐색에 분주했다.
경기 결과는 12-0으로 어이없는 대패였다. 후반에 무려 8골을 빼앗겼다.
스웨덴은 우세한 체력으로 논스톱 패스와 헤딩 플레이를 자유자재로 구사, 우리 팀 골문을 유린했다. 그런 중에도 우리 팀 골키퍼 홍덕영은 50여 개의 강슛을 엎어지며 쓰러지며 악착같이 막아내 박수를 받았다.
어느덧 대회는 중반을 넘어서는데 우리 선수단은 패전만을 거듭, 흡사 초상집 같은 분위기였다.
8월7일은 대망의 마라톤이 벌어진 날이다. 우리 선수단은 마라톤이 기필코 좋은 성적을 거둬 베를린 올림픽을 제패한 손기정의 영예를 되찾고 그 동안의 패전을 설욕해주기를 기원했다.
마라톤엔 보스턴대회(47년)를 제패(2시간25분39초)한 서윤복(당시 26세)을 비롯, 최윤칠(당시 20세· 경복중)· 홍종오(당시 22세· 고려대) 등 패기만만한 3명이 출전했다.
섭씨 38도까지 오르는 무더위와 싸우며 역주한 최윤칠은 27km 지점에서 앞서 달리던 「게일리」(벨기에)를 따돌리고 선두에 나섰다. 40km 근처까지 선두를 지킨 최윤칠은 그러나 메인 스타디움을 밟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에 경련을 일으켜 기권하고 만 것이다.
메인 스타디움에서 장내방송을 들으며 흥분 속에 최윤칠의 입장을 기다리던 우리 임원들은 막상 나타난 선수들을 보고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우승을 확신했던 최윤칠은 도중 기권, 홍종오는 25위, 서윤복은 27위였다.
최윤칠은 그후 『경기를 앞두고 힘을 소비하지 않기 위해 운동량을 줄인 대신 기름진 음식을 먹어 다리에 지방질이 생겼기 때문에 경련이 일어난 것 같다』며 우승 문턱에서 좌초한 원인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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