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농장에서 행복한 노후를"…은퇴 노인 등 700명 속인 협동조합 대표 구속

중앙일보

입력

 “조합원으로 가입만 하면 노후 걱정은 끝입니다. 우리 조합에서 화천에 3만평 정도 되는 협동농장을 마련해 놨거든요. 집도 얻고, 일자리도 얻고, 같이 농사 지으면서 행복하게 살면 되는거죠. 또 조합에서 만든 물건들을 구입하면, 4달안에 수익을 두배로 돌려드립니다.”

A협동조합 조합장 박모(60)씨의 말을 들은 예모(61ㆍ여)씨는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은퇴 후 뭘 하면서 살지 고민하던 예씨의 머릿속엔 농사를 지으며 물품 수익금으로 돈도 버는 장밋빛 미래가 그려지는 듯 했다. 게다가 ‘협동조합’이란 말에 예씨의 마음이 더 흔들렸다. 박씨는 “협동조합은 국가에서 권장하는 사업”이라며 예씨를 안심시켰고, 결국 예씨는 1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박씨의 말은 결국 사기로 드러났다. 박씨는 피해자들에게 “협동농장에 들어설 집이 한 채당 2억 3000만원인데, 조합원들은 5000만원만 내면 집을 구할 수 있다. 나머지 비용은 저리로 융자를 받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박씨가 협동농장 부지라고 알려준 주소지는 하천 주변 부지였다.

이외에도 박씨는 다양한 말로 피해자들을 속였다. 협동조합에서 생산한 물건이라며 새싹 분말, 효소, 살균세척기 등 40여가지가 넘는 물건을 보여주고, 시중 가격보다 5배 넘는 가격으로 피해자들에게 판매했다. 박씨는 “물건 판매로 남는 수익을 조합원들에게 분배해, 4달안에 물건 구입 값의 200%를 돌려주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지난해 3월엔 화천에 피해자 500여명을 초대해 물품 생산 공장을 건설할 부지라며 기공식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부지 역시 공장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남의 땅이었다. A협동조합은 신규 조합원들에게 물건을 팔아 나온 수익을 앞선 조합원에게 배당하는 전형적인 ‘다단계’ 방식으로 운영됐다. 예씨는 “사람들을 초대해 기공식까지 여는 것을 보고 의심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예씨와 같이 박씨 말에 속아 A협동조합에 투자한 사람들이 전국에 700여명 이상이었다. 협동조합인데 설마 다단계와 같은 사기일리가 없다고 생각해 의심 없이 투자한 것이다. 피해자 대부분은 은퇴 후 노후대비를 위해 투자처를 알아보던 60~80대 노인들이었고, 은퇴자금 4000만원을 모조리 쏟아 부은 전직 교장선생님도 있었다. 피해 나모(76)씨는 “공장을 짓는 데 2000만원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박씨에게 건넸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까지 이런 방식으로 계속된 박씨의 사기 행각은 결국 배당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점을 의심한 조합원들이 경찰에 박씨를 고소하면서 끝나게 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달 A협동조합 조합장 박모(60)씨를 유사수신 및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일당 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4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협동조합이란 이름을 내걸고 벌이는 다단계 사기의 경우 전국을 단위로 하며 비교적 적은 금액을 노린다는 특징이 있다”며 “특히 퇴직금 등을 투자할 곳을 찾는 노인 분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준석 기자 seo.junsu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