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범법자 만드는 '베란다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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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쓰는 작은 방의 베란다를 터서 넓혔는데 이것도 위법입니까?"

"구청에 신고는 하셨나요?"

"몰랐는데요. 이런 것도 다 신고해야 합니까? 우리 동네 아파트에선 베란다를 트지 않은 집이 거의 없어요."

건설교통부가 아파트 발코니(베란다)의 불법 개조를 단속키로 했다는 본지 보도가 나가자 독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베란다를 이리저리 고쳤는데 괜찮냐는 문의다. 들어보면 규정상 대부분이 불법이다.

전국에서 매년 지어지는 아파트는 약 35만채. 업계 추산으로는 많게는 입주자의 60~70%가 베란다를 트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에 가 보면 입주도 하기 전에 멀쩡한 거실 창틀을 뜯고 베란다 바닥을 메우느라 북새통이다. 자원 낭비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위법이라는 의식도 없다.

현재 기존 아파트의 30%가량은 어떤 식으로든 불법 개조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판에 건교부가 베란다 불법 개조를 단속하겠다고 나섰으니 많은 사람이 불안해하는 게 당연하다. 새로 입주하면서 베란다를 뜯어고친 사람은 둘째치고, 이미 불법으로 개조된 아파트를 사서 들어간 사람은 또 무슨 죄인가.

막상 불법을 단속하겠다고 나선 건교부는 건교부대로 끌탕을 하고 있다. 단속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우선 불법 개조 여부를 조사한다고 남의 집 안에 막무가내로 들어갈 수가 없다. 바닥재를 제대로 썼는지 부수고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단속하라는 지시를 받은 구청 공무원들은 "무슨 수로 단속하느냐"며 볼멘소리다.

원상복구는 더 어렵다. 이러다 보니 '재수없이 걸린' 불법 개조 아파트 주민의 원성만 높아진다. "누구나 다 하는 불법 개조를 가지고 왜 나만 문제 삼느냐"는 항변이다. 결국 단속은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불법이 만연하는데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으니 경고라도 해야겠다"는 게 건교부의 단속 명분이다.

지키기 어려운 법규정과 실행하기 어려운 단속이 평범한 아파트 주민들을 잠재적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김종윤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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