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국적「경제정책협의회」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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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0년대초 이래 우리 경제가 성장하는데 있어 견인차 역할을 하였던 수출에 이상이 생겼다. 최근의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금년 9월말까지의 수출실적이 전년동기에 비해 1.3%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수출이 부진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세계경기의 하락을 들수 있을 것이다. 특히 수출에서 미국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35%를 상회하는 우리에게는 미국의 경기가 작년 하반기부터 급격히 하강국면으로 들어서고 신흥공업국에 대한 각종 수입규제가 계속 강화되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장애가 아닐수 없다.
그러나 최근의 수출부진을 단순히 세계경기 하락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세계경기가 하강국면에 있다고는 하나 세계교역량은 여전히 연율로4∼5% 증가하고 있으며 최근보호주의 기운이 더욱 강화되고있는 미국의 수입액도 금년들어7∼8%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실적에 비추어 보면 이와 같은 세계경제여건이라면 우리 수출이 적어도 연10%정도의 신장을 보여야 할텐데 오히려 약간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수 없다.
한가지 특기할 사실은 최근의 수출부진은 우리만이 아니라 이제까지 국제사회에서 개발도상국중 최우등생으로 불리어오던 대만·싱가포르·홍콩등 동아시아의중진국들이 모두 동시에 겪고 있다는 점이다. 싱가포르는 금년 7월까지 수출실적이 5.6%나 감소하였고 상반기 경제성장률도 0.6%에 그치고 있어 이들 국가중에서도 가장 심한 어려움을 겪고있다. 홍콩 역시 금년 7월까지의 수출이 4.5%나 감소하였고 이들중 가장 모범적이라고 알려진 대만도 8월말까지의 수출이 전년동기에 비해 1.3% 감소하였다.
결과적으로 세계수출시장에서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우등생경제들의 점유율이 최근들어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국가의 수출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로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다. 중공·인도·태국등 신홍개발도상국들이 수출촉진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동아시아의 중진국들은 섬유·신발등 단순 노동집약적인 부문에서의 수출시장을 점차 잃고있는 반면 기술집약적인 부문에서의 새로운 수출시장개척이 지연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 동아시아 중진국들은 국가의 규모가 작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보호주의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국제무역협상을 하는데 있어 매우 불리한 입장에 있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이는 최근 미국의 각종 보호주의의 화살이 덩치가 큰 캐나다와 구주공동체에는 가지 않고 보복할 힘이 약한 동아시아 중진국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로도 잘 알수있다.
최근 수출부진의 원인을 이와 같이 분석할때 대외적 수출여건의 단기전망은 별로 밝지 않다고 불수 있다. 왜냐하면 작년 하반기부터 소강상태를 보인 미국의 경기가 단기간에 크게 개선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문제가 되고있는 보호주의 추세는 당분간 오히려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대외여건보다는 대내여건의 개선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업게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어려운 대외 여건하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선 우리의 경쟁국들이 국제경쟁력의 강화를 통해 새로운 수출시장을 개척하는데 더욱 더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싱가포르가 금년4월에 수상직속으로「경제위창회」를 구성하여 싱가포르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의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며 대만 역시 금년5월 정부 학계 기업계 중진들로「경제혁신위원회」를 구성하여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대안들을 모색하고 있는 것 등이 그단적인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최근수출부진과 경기하락의 원인이 80년이후 추진해온 안정화시책 때문이라면서 현 경제정책의 기본틀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대로 최근 수출부진은 대외여건아 우리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는데다가 우리가 이러한 상황변화에 슬기롭게 대처하는데 있어 미흡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정책의 초점은 내수확대를 통한 국내경기의 단기적 진작보다는 각 부문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이웃 경쟁국들보다 더 많이 함으로써 새로운 수출제품과 수출시장을 개척하는데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내수진작을 위해 성급히 추진된 대책 때문에 이제까지 어렵게 이룩한 물가안정기반이 깨어진다면 우리경제의 국제경쟁력은 더욱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대만 싱가포르 홍콩과는 달리 많은 외채를 지고있어 앞으로의 경제정책 선택에 보다 신중을 기하고 국제수지를 개선하는 노력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기간에 실효를 거두고 있는 획기적인 처방이 있을 수 없은 현상황에서의 당면과제는 대외여건악화로 인한 성장둔하를 당분간 감내해 가면서 그간 많은 노력의 결과로 얻은 물가안정 기반을 잘 활용하여 수출시장에서 우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계각층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같이하고 이의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분위기의 조성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하겠다. 따라서 싱가포르나 대만과 같이 우리도 각계의 중진들로「경제정책협의회」를 구성하여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에 대한국민적 합의를 구함은 물론 어려운 대외여건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상목<한국개발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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