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8> <제83화 장경근일기><29> 본지 독점게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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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60년l2윌31일
고난의 경자년이 막을 내린다. 조국이 민주국가 건설 초창기에 시련을 겪고 그 여파에 흔들리고 있고 나개인 일생처음으로 형언키 어려운 망명의 고난속에서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것은 기적이다. 금후의 나와 방순과 고국에 남겨놓은 가족들을 에워싸고 있는 불안도 어느때쯤 사라질지 아득하다. 김기철사장이 며칠에 한번씩 모아다주는 국내신문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더 많다.
정변후 데모는 여전히 성행하고 있고 혁명재판·부정축재자 처단등 소위 반혁명세력에 대한 끊임없는 압력으로 사업체·산업시설등은 붕괴내지 마비되어 경제계는 불경기, 산업활동 부진, 전력사정 악화, 농촌의 피폐, 인플레, 사회불안등으로 더욱 나빠졌다고 조일신문은 서울특파원 발신의 기사를 싣고있다 (12월30일 조간).
민주당정부 수립후 정부 또는 여당계 정치인들이 이구실 저구실로 너무 빈번히 일본에 내왕한다. 장관이 출석할 필요도없는 국제회의에 장관이 출석한다든지, 시찰여행 또는 분명한 명분없이 이곳에 와 오랫동안 머물며 교포재벌과 비밀리에 왕래한다든지, 심지어 관서지방에 가서 교포재산가에게 돈을 구걸하기도하고 심하게는 호텔숙박료도 남에게 떠넘기고 귀국하는등 듣기에 거북한 일들이 일어난다.
국내에서 우려들끼리라도 부끄러운 일인데 일본사람들이 보는데 이런 꼴은 정말 낮뜨거운 일이다. 국외에도 야당의 감시가 있으니 이런 일이 문제되어 시정될 날이 올는지….
나를 포함한 몇사람을 진보당사건 조작의 장본인으로 모함했던 고정훈씨에 대한 명예훼손혐의 2심 판결은 1심의 1년 징역과는 달리 선고유예판결을 내렸다. 민주주의의 기반은 개인의 존엄성과 명예를 보호하는 일인데 법원이 이점을 등한시하는 경향은 결코 옳은판단이 아니다. 이래저래 심란하기만한 세모다.
어제 저녁 만순은 꿈에 정화를 만났는데 정화가 만순에제 그가없을 때는 어머니가 돌아와 있고 그가 돌아오면 어머니는 가곤한다며 짜증을 내더라면서 서울의 아이들 생각으로 눈물에 젖어있다. 나도 며칠전 꿈에 윤국이를 봤다. 만순과 내가 고국을 떠난지 한달반이 넘어도 소식을 전하지 못한채 새해를 맞게되니 멀리 고국에서 부모없이 불안과 추위속에 떨고 있을 어린것들을 생각하니 비감함을 참을 길이없다.
나의 병때문에 만순이 ,이곳까지 따라와 내 곁에 한시각이라도 없어서는 안될 존재지만 만순이 서울에 남아 있었더라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위안이될까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아프다.
이병균군이 아직도 후꾸오까의 미결감방에서 추위에 떨며 새해를 맞이할것을 생각하니 내 자신이 고생함보다 마음이 더 무겁다.
오늘 저녁은 자정을 기다려 라디오를 통해 일본 각지 유명사원의 제야의 종을 만순과 더불어 듣는다. 해방후 외국에서 새해를 맞기는 두번째다. 지난 57년 유엔총회 대표로 뉴욕에 갔을때 브로드웨이의 가장 번화한 타임스퀘어에서 미국인들의 화려한 새해맞이를 구경했는데 4년후의 오늘은 젼혀 상반된 환경에서 만순과 단둘이 고적한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새해는 우리의 출입국 관리렴령위반 재판으로 시작된다. 후꾸오까 재판소는 1월25일을 재판기일로 정해 출두통지서를 보냈다. 우리 재판엔 서울서 변호사를 하던 「시미즈」(청수정웅) 변호사도 참가해 모두 3명이다.
도오꾜에서도 8·15전 서울지법부장판사였던 동문인 「요네다」(미전), 「와따나베」(도변), 역시 서울서 변호사를 하던 「안또」(안등) 변호사등이 나를 돕고있다. 줄곧 도움만 받는 생활이다. 하루속히 망명이 승인되어 내 생활을 내 힘으로 꾸려가고 싶다. 그게새해 나의 간절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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