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칼럼

불확실한 미래도 내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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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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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민
서울여대 언론홍보학과 4학년

비가 온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숨 쉬는 게 왠지 편안하다. 대지가 씻겨나가는 냄새가 코로 스며드는 느낌도 나쁘지 않다. 나는 지금 비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가 오면 몸서리를 치곤 했다. 비 오는 날이면 이상하리만치 무기력해져서 꼭 학교에 지각을 했다. 주기적인 편두통이 비 때문일 거라고 확신했었다. 그랬던 내가 비를 즐기러 밖으로 나왔다니. 나란 존재, 참 알 수 없다.

바뀐 게 어디 이것뿐이겠나. ‘기쁘거나 혹은 슬프거나’ 둘 중 하나였던 감정은 ‘조금 기쁘기도 하지만 씁쓸하며 마음 한편으로는 슬픈 상태’와 같이 복잡 미묘해졌다. 친한 친구 한 명과 같이 있으면 세상이 다 내 것인 양 호기로웠던 예전과 달리 연락처에 500명이 넘는 친구의 전화번호를 저장해놓고도 외로움을 느낀다. 슈퍼맨보다 힘이 세다고 생각했던 아빠는 알고 보니 키가 1m70㎝도 되지 않는 단신이었고, 나는 이제 그가 강할 때보다 ‘나약할 때’가 더 많은 평범한 중년 남자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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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나’. 문득 신이 있다면 이렇게 고민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깔깔거리며 웃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가 보았을 때는 모두 다 똑같은 ‘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비를 혐오하던 나도, 비가 좋아진 나도 결국 ‘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나는 또 비가 싫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것 역시 ‘나’라는 사실이다. 나의 변화는 아무도 알 수 없고, 또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니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 비해 지나치게 초라하더라도, 혹은 현재의 내가 그리는 미래의 나의 모습이 지나치게 희미해 절망감이 들더라도 크게 좌절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졸업을 앞두고 미래를 걱정하는 친구들을 종종 보게 된다. 내 친구들뿐이겠는가. ‘5포세대’로 불리는 우리 세대 청년이라면 누구나 점점 더 흐려져만 가는 ‘자신의 미래’를 견디기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처럼 청춘이기 때문에 의당 견뎌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무력하고, 미래는 희미하더라도 함께 손을 맞잡고 용기를 북돋우자고 하고 싶다. 이 모든 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래도 우리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끊임없이 찾아나가고 있지 않냐고, 그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서로 얘기하면서 말이다.

이 유 민
서울여대 언론홍보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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