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희생자 49명을 위로하는 49마리의 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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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올랜도 총기난사 추모식이 열리는 상공을 날아가는 49마리의 새 [사진 페이스북 캡처]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총기난사(12일)로 49명의 무고한 목숨이 희생됐다. 올랜도 중심가 닥터필립스 아트센터 광장에선 이튿날부터 희생자를 위한 추모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14일 추모집회에 참여했던 사라 오짐은 형형색색의 촛불이 켜진 가운데 추모객들과 함께 있었다. 모두의 침묵 속에 사망자의 이름이 하나하나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그 순간 머리 위로 한 무리의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고, 사라 오짐도 새를 쳐다보다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확인하던 그는 사진 속 새가 49마리라는 걸 확인하고 숨을 멈췄다. 올랜도 사건의 희생자와 꼭 같은 수의 새가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던 거다. 사라 오짐은 이 사진을 “여기 49마리의 새, 내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오늘 우리와 함께 있었다”는 글과 함께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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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오짐의 이야기를 전한 페이스북 [사진 페이스북 캡처]

미국 온라인 매체 마이크(Mic)는 “당시 추모식 주최 측에 문의한 결과 새를 풀어주는 행사는 없었다”며 “60마일(96㎞)쯤 떨어진 호수에서 49마리의 비둘기를 날려주는 행사가 있었지만 이번에 목격된 새와는 다른 종류”라고 보도했다.

사람이 죽어서 새로 환생하는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하게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다. 김소월 시인의 <접동새>에선 죽은 누나가 접동새가 되어 운다. ‘야삼경(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새가 운다는 표현 속엔 물리적인 새소리 외에 사람처럼 슬피 운다는 감성적인 느낌도 포함되어 있다. 올랜도에서 추모장소를 날아오른 49마리의 새들과 그 새를 보고 희생자를 떠올린 사라 오짐.

여기다 불교적인 이야기를 보태자면 49라는 숫자는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49재 천도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희생자를 기리는 49마리의 새.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소소한 위로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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