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량모자라는 정치쟁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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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근 2주일동안 우리 정계는 박찬종 조순형의원 사건을 놓고 강도높은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학원소요를 선동했느니 안했느니, 한 대학생의 메시지를 전달했느니 않았느니로 설전을 벌이더니 마침내 검찰이 두 현역의원을 강제로 붙들어 조사를 하고 기소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사태로 여야는 초강경으로 맞서 정기국회의 개회를맞고서도 수습의 길을 못찾고 있다. 이바람에 20일 문을연 정기국회가 제대로 운영될지의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러나 정가의 이같은 뜨거움과는 달리 많은 국외자들로서는 어느편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에 앞서 이문제가 그토톡 심각하며 다룸의 질과 양이 과연 마땅한가 하는 의아심을 품게되는것 또한 사실인것 감다.
한마디로 여야정당이 온통 매달려 싸울만한 「꺼리」가 아니지않느냐는 지적과 함께, 발단에서 확전에 이르는 과정이 국민의 기대와는 동떨어졌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고있다.
민정당은 학원사태의 난해성에 고민한 나머지인지는 몰라도 처음부터 이번 사건에서 너무 많은 해답을 구하려 덤빈듯한 인상을 주었다. 정부보다 한발 앞서 동료의원의 의법조치를 촉구했고, 검찰보다 먼저 기소여부를 예단하는 위력(?)을 보였다.
우리 현실과 사리로 보아 정치인의 학원개입은 차단돼야하고 특히 학원이 특정정치집단에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집권당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이 있을때」행사하는 공권력을 과정에 대한 검증없이 여당이 이래라 저래라하는 인상을 준것은 순리라고 말하기 어려우며 차제에 야당으로부터 재발방지 다짐을 받겠다고 정치판을 서둘러 달아오르게 한것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다.
야당의 방어논리와 전략에도 문제점은 있다. 비록 신민당과 당사자는 당일 고려대에 간것이 심각한 학원문제를 직접파악하려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직분수행이라고 주장하나 두 의원의 당시 언동에 대해서는 「경솔했다」는 지적을 낳게하는 요소가 있었던것도 사실이다.
학생을 선동하러간것이 아니고 현장파악이 목적이었다면 메시지전달여부를 시비의 초점으로 만들게 아니라 처음부터 당당히 오해를 해명하고 동기와 상장을 설명하고 나왔어야 옳았다는 지적이 신민당내에도 많다.
여야의 대응에서 볼 수 있는 이런 문제점이 단순히 여야자기들만의 문제에 그친다면 다투거나 말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 처지가 어떤데 정치가 이런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단순한 걱정을 넘어 분노까지 느끼게 된다. 당장 남북고향방문단이 20일 휴전선을 넘어 오가고, 내달에는 최대의 국제행사라는 IMF총회가 서울에서 열려는데 정계는 고작 「국회공전」 「정국긴장」 「여야대립」의 모습밖에 보여줄수 없는 것인가. 뿐만아니라 경제침체다, 수입개방압력이다, 강대국의 한반도문제논의다 하여 우리의 생존과 생활에 직결되는 수많은 문제를 안고있는 터에, 오순도순 머리를 짜도 최선의 대응을 할수있을지 걱정스러운 터에 기껏 「고대앞사건」으로 이런 문제들을 다 제쳐놓고 다투는 것만이 올바른 정치일수 있을까.
여야 다같이 깊이 생각해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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