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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의 콩고 르포-고마시 난민 캠프에 가다] 구호품 끊긴 콩고 난민들, 콩 줄기로 죽 끓여 끼니 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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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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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민주공화국 고마시 불렝고 캠프의 난민 어린이들이 땔감용 나무를 운반하고 있다. 내전이 격화된 2012년 이후 국제 구호품이 크게 줄면서 이곳의 난민 절반 이상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사진 월드비전]

‘세계의 살인 수도’, ‘세계의 성폭행 수도’.

12월 대선 앞두고 반군 활동 거세
NGO들, 치안 나빠 하나 둘 떠나
난민 절반 배고파 목숨 걸고 귀향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은 부끄러운 이름을 두 개나 지닌 비극의 나라다. 이 나라에선 이웃 르완다 내전과 종족 갈등이 촉발한 내전으로 1996년 이후 최소 540만 명이 사망했다. 인구(지난해 기준 8168만 명 추정)의 7%가 희생됐다. 내전은 여성들에게 가혹한 상처를 남겼다. 내전이 치열했던 2006~2007년 매 시간 48명의 여성이 성폭행 당했다. 2012년 정부군과 반군의 휴전 이래 다소 잠잠했던 이곳이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들끓고 있다.

지난달 10일 방문한 DR콩고 북키부주 고마시의 불렝고 난민 캠프에선 참담한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반군이 고마시를 점령하고 위기감이 고조됐던 2012년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이 끊기며 구호품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취재진을 따라다녔지만 어른들의 얼굴엔 시름이 가득했다. 캠프 곳곳엔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풀죽이라도 끓이려고 캐놓은 콩 줄기 등이 널려 있었다. 6.6㎡(2평) 남짓한 허름한 천막에 6~7인 대가족이 사는 경우도 허다했다.

불렝고 캠프에서 만난 노엘라 방가시(12·여)는 어린 나이에 언니의 딸 비비안(5)과 아가페(3)를 책임지는 가장이지만 외부 단체로부터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방가시는 2014년 북키부 마시시에서 내전을 피해 언니·조카들과 이 캠프로 피난 왔다. 부모님은 피난 도중 헤어져 생사를 모른다. 언니는 캠프에 도착한 직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까지 방가시에게 식량을 지급하던 세계식량기구(WFP)도 구호품 부족 탓에 올해 지원 명단에서 그를 제외했다. 구호품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얻은 옥수수 가루나 풀죽이 세 소녀가 먹는 식량의 전부다. 방가시는 “부모님을 보고 싶지만 찾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 칭얼대는 두 조카를 양팔로 끌어안은 방가시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먹을 것이 떨어지자 일부 실향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캠프 관리자인 에마누엘 아탕가(43)는 “외부 지원이 많았던 2012년엔 이 캠프에 5200명 정도가 있었지만 현재는 절반이 넘게 떠나고 2307명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남아 있는 난민은 대부분 방가시처럼 고아이거나 편모 가정, 장애인 등 떠날 여력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2012년 마시시에서 고마시의 무붕가1 난민 캠프로 온 투이니메 클로딘(34·여)은 2년 전 남편이 캠프를 떠난 뒤 날품팔이를 하며 네 자녀를 키운다. 그는 “최근 구호품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지만 갈 곳이 없어 캠프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고향으로 돌아간들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한 고마시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북키부 일대는 무법천지다. 수도 킨샤샤와 정반대인 동쪽 국경에 접해 있어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다. 40여개의 무장단체가 이 지역에서 수시로 교전을 벌이며 주민을 약탈한다. 여성들은 성폭행, 남성들은 강제 징집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캠프를 떠나 귀향하는 사람들은 사지로 내몰리는 셈이다.

올 연말 대선을 앞두고 반군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남아 있던 비정부기구(NGO)들도 하나 둘 이곳을 떠나고 있다. 기자가 도착하기 일주일 전인 지난달 3일 고마시에서 북키부 루츠르로 이동하던 국제적십자 직원 3명이 무장단체에 납치됐다. 4월 말엔 국제 NGO 머시코프의 직원 5명도 북키부 냔잘레에서 납치됐다. 이후 머시코프와 적십자는 북키부 사업을 잠정 중단했다. 급격히 악화된 치안 탓에 다른 난민 캠프 취재가 취소되기도 했다.

최악의 여건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NGO도 있다. 국제 구호단체 월드비전은 귀향민이 늘어난 루츠르 지역에서 식량 생산을 늘리고 위생·치안을 증진하는 재건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내년 12월까지 3년 간 주민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월드비전 루츠르 사업을 총괄하는 크리스천 카세레카는 “현지 치안은 좋지 않다. 마을 인근엔 정부군이 배치돼 있어 비교적 안전하지만 10㎞만 벗어나도 무장단체와 마주칠 수 있다. 항시 치안을 점검하고 위험해지면 즉시 대피가 가능하도록 대비책을 마련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기준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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