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두려워하는 마음가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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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외채가 4백50억달러나 된다하니 깜짝들 놀라는데 놀랄것 하나도 없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은것이 아니라 쌓일게 쌓였을 뿐이다.
놀라는 사람들도 꼭 남이 저질러놓은걸 보듯 하는데 그럴일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다같이 거든 것이다.
나라살림이나 집안살림이나 이치는 같아 번것보다 적게 쓰면 재산이 모이지만 반대의 경우는 빚이 쌓인다.
외채가 많다는 것은 우리의 살림이 너무 정도에 넘쳤다는 뜻이 된다. 그것도 한 두해가 아니고 오래 그러다보니 그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린것이다.
한때 『좋아졌네』라는 노래가 정책적으로 크게 장려되었다.
처음옌 정치 잘했다는 자랑도 할겸 웃사람의 치적도 칭송할겸 해서 시작되었는데 그 노래를 합창하다보니 어느새 정말 좋아진줄 착각들을 하게돼 나중엔 노래에 맞춰 살림을 살게 되었다.
우리네 살림이 그렇게 갑자기 좋아질수는 없다. 고도성장의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게 60년대 후반부터인데『좋아졌네』 소리는 벌써 70년대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한번 높아지기 시작한 생활수준은 좀처럼 내릴수가 없다.
혹독한 오일쇼크가 와도 세계적 불황이 와도 마찬가지다.
지금 번것 가지고는 감당이 안되니 다음 벌것이라도 당겨쓰자 이렇게하여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게 되고 그 외상값이 모여 외채로 쌓여있는 것이다.
모두들 가불해 살았다고 볼수있다. 80년대에 들어선 더욱 그랬다. 그동안 그나마의 성장률도, 한자리숫자의 물가안정도 공짜가 아닌것이다. 국제수지의 적자, 즉 외채를 대가를 한것이다.
많은 외채를 남의 탓으로 돌릴게 아니란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빚이란 한번 쌓이기 시작하면 걷잡을수 없다.
이자에 이자가 붙어 눈덩이처럼 커진다. 금년들어 7개월동안에 외채가 20억달러나 늘었다.
금년초에 종합국제수지대책이란걸 만들어 손을 쓴다고 했는데도 이렇게 늘었으니 가만있었으면 얼마가 늘었을지 모르겠다.
국제수지개선은 최근 들어선 자주 내세웠고 그때문에 5차5개년계획까지수정했다.
그런데도 외채는 자꾸 늘어 GNP의 절반을 넘기게 되었으니 무슨 다른수를 찾아야 할것 같다.
얼마전엔 다시 외채대책이 나오고 야당에서도 외채절감운동을 벌인다 한다.
이번엔 뭐가 좀 될 모양이다.
사실 무슨수가 나야지 외채를 이대로 끌고가다간 큰일이다.
아직도 돈 빌려주겠다는데가 많아 빚을 빚으로 메우더라도 부도야 안나겠지만 너무 억울하고 자존심 상한다.
1년에 외채이자만도 40여억달러나되니 GNP의 5%를 고스란히 리는 셈이다.
빚 쓸땐 좋았지만 지금은 돈이 나가는 아픔이다. 또 빚 많으면 큰소리를 못친다. 나라안에선 빚이 많으면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일이 없지않으나 국제사회에선 그게 어렵다. 어떻든 이젠 외채문제에 사생결단하고 안매달릴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외채문제를 푸는 가장 근본적인 길은 빚을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해야 한다.
빚을 겁내지 않은것이 오늘날 이토록 외채더미를 만들었다고 볼수 있다.
남의 돈을 빌었으연 갚을때 생각하고 정말 잘 써야하는데 그런 생각들이 최근 들어 많이 희박해졌다. 이제까지의 외채대책들이 제대로 효험이 안난것도 빚을 두려워하는 정신이 빠진채 구호식으로 합창되었기 때문이다.
얼마전만해도 외채문제에 대해선『다른 나라에서 서로 빚을 주려는것만봐도 외채는 별문제없는데 괜히 안에서 걱정들둘이다』라는 태도였다.
부도만 안나면 괜찮은 걸로 생각한것 같은데 외채문제는 그보다 훨씬 심각한데있다. 물론 외채가 많아도 쓴데 잘썼으면 걱정안해도된다. 한때 일본도 외채가 퍽 많았으나 이젠 다갚고도 외화자산을 7백50억달러나 갖고있다. 빚을 정말 두려워하면 외채를 잘쓰지 않을수없다.따라서 외채는 겁난것이란 생각들을 널리 심어 주는것이 가장 급하다.
인구시계탑모양 외채 늘어나는것을 한눈에 볼수있는 전광판같은걸 만들어 정부종합청사나 잠실운동장, 김포공항같은데 큼직하게 세우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무슨 정책을 짜거나, 국제적인 행사를 벌이거나, 외유 나갈때 외채탑을 한번 보는것만으로도 효과가있을 것이다.
또 「칼·루이스」나 「메리·데커」같은 선수도 어마어마한 금액이 적힌그걸 한번 보면 그렇게 성의없는 경기는 못할 것이다.
TV위성중계를 할때도 외채올라가는 것을 숫자로 나오게하면 가슴이 아파서라도 위성중계 줄이자는 소리가 빗발칠 것이다.
외채를 줄이려 마음먹어도 체면때문에 못줄이는게 많다.
정부는 국민들에 대한 체면을, 한국사람들은 외국사람들에 대한 체면을 너무 무겁게 여긴다.
동방예의지국이이서 그런지 어떻든 손님을 환대하고, 남이 불편해 하는것을 못본다. 『이번만은』하고 마음약하게 굴다보니 외채가 자꾸 쌓이는 것이다.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실행을 못하고있는 것이다.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데 남이해줄 일이 아니라, 모두가 해야한다. 외채탑은 마음을 독하게 먹는 좋은 계기가 될것이다.
외채가 이토록 쌓인것도 그게 제일 자각증상이 적기때문이다. 성장률이 떨어지거나 물가가 올라가면 즉각 통증이 오지만 국제수지는 그게없다. 그래서 국제수지가 항상 뒷전에 밀린다. 잘된다고 해놓고 체면안서게 불편을 강요하기보다 뒤로 미루는것이 편한것이다.
외채탑을 곳곳에 세워 택시미터 올라가듯 찰깍찰깍 빚 늘어나는게 보이면 아무래도 달라질 것이다.
불편하다고 아우성을 치기도 어려울 것이고 정부도 독해질수 있을 것이다. 채는 모두가 좀 불편해져야준다. 이제까지와 꼭같이 살아서는 안줄게 되어있다.
그러나 외채탑을 세우려해도 또 외채가 는다. 물한통, 멘트 한부대, 유리한장, 외채가 안드는게 없다.
가장 좋은길은 외채탑을 각자 가슴속에 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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