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박사」와 「외국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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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드디어 박사학위를 갖고서도 대학의 시간강사자리 하나 얻기 힘든 시대가 오고야 말았다.
반가운 현상인지 한심한 현상인지는 보는 눈에 따라 다를 것이고 당하는 사람의 경우에 따라 다를 것이겠으나 요즘에 와서 특히 인문사회과학분야에 그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형편이 어렵기는 국내박사나 외국박사나 비슷한 처지일 것이고 얼른 생각하기에는 국내박사가 더 어려울 성싶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몇 해 전까지는 무조건 외국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에 우선적으로 기회가 돌아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요즘 와서 많이 달라졌다. 자연과학분야는 그렇지도 않겠지만 인문사회과학분야는 반드시 외국학위가 우선적인 대우를 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
특히 국내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고 외국에서 대학공부를 한 박사의 경우 결정적으로 불리한 입장이 되어버렸다. 요즘 대학가의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인문사회과학분야에서 외국의 박사학위가 옛날처럼 권위를 인정받기 어렵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대체로 70년대 중반부터 나타난 우리 나라 학계의 움직임이나 우리사회의 변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인문사회과학분야에서는 70년대 중반쯤부터 이른바 갈등이론이라는 것이 대학가를 휩쓸다시피 했다.
신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에서 현대자본주의산업사회를 흑백론적으로 분석하는 갈등론의 논리가 젊은 세대들에게는 명쾌하고 진보적인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70년대 중반에 대학가에서는 갈등론을 말하지 않고서는 교수이건 학생이건 사람취급을 받기 힘들 정도였다.
어쩌면 그 당시 대학강단에서 가르쳤던 소장학자들이 외국서 배운 것이 갈등론 말고는 없었기 때문에 대학가의 분위기가 그렇게까지 돌아갔던 것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말 깨나 하고 머리 깨나 있는 대학인들은 너도나도 갈등론의 신봉자처럼 보였다. 그 결과 우수한 젊은이들이 대거 그 위대하고 매력적인 갈등론을 배우려 외국유학길을 떠나기 시작한 것이 70년대 후반부터다.
그들이 이제 박사학위를 갖고 돌아오기 시작하는데서 어려운 문제가 생긴 것이다. 외국서 개발된 갈등론의 공식으로 우리사회와 문화를 분석하고 설명하는데서 처음에는 참신하고 날카로운 시각을 제공받은 듯 싶었고 따라서 갈등론적 관점에서 과감하고 진보적인 비판과 진단을 할 수도 있었는데 그 뒤를 이어서 따라나와야 할 해결방안이나 대안의 제시가 감감무소식인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갈등론은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비판의 소리는 높여주었지만 치료와 처방책은 제시하지 못했고 오늘에 와서는 그 비판의 소리조차 편협하고 단편적인 것이라고 비판받아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갈등론 자체의 유행이 우리사회에서 한물 지나가게 된 것이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으로는 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갈등론이 제공해줄 수 있는 현실적 생활방식의 문제다.
그 이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밥을 벌어먹거나, 그 이론을 적용하여 현실에 도전하는 것으로 밥을 벌어먹거나 두 가지 생활방법밖에는 없을 터인데 외국서 배운 이론과 지식은 그것을 소개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응용해서 실천하기는 어렵게 마련이다. 그런데 갈등론으로 무장된 박사들이 일할 수 있는 자리는 벌써 70년대때 그 이론을 처음 소개한 교수들에 의해서 거의 전부 차지되어버린 것이다.
좀 안된 말이지만 70년대에 외국서 갓 돌아온 패기만만한 젊은 학자들이 자기네가 배운 최신의 이론을 열심히 가르친 결과 이 나라의 순진하고 우수한 젊은이들이 홀딱 반해서 그 이론을 더 배우려 몰려들었고, 이제 그들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그 이론의 유행은 이미 지나갔으며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선배들은 아직도 창창한 젊은 나이라고 하는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비교적 나은 측면이다. 70년대 대학입시경쟁의 어려움을 피해 외국으로 탈출한 젊은이들이 부모의 도움으로 외국에서 명문사립고교를 거쳐 명문대학에 진학, 드디어 최고수준의 학위를 받고 금의환향하는 경우가 요즘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외국박사에게 대학에서 시간을 맡기기 꺼려하는 이유 중에 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감춰져있는 진짜이유는 무엇인가. 불합리하고 불평스러울뿐 아니라 비교육적이기까지한 우리 교육제도이고 대학입시제도이지만 그 속에서 체험하면서 자란 사람만이 그 제도와 현실의 문제를 고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키울 수도 있으리라는 믿음, 어느 외국서도 경험할 수 없는 우리의 어려운 현실 속에 머무르면서 국내에서 공부한 젊은 인재들의 저력을 믿어보고 싶은 기대, 그리고 속된 말로 모래밭에 혀를 박고 미련하게 이 어려운 현실을 견뎌온 저들의 사기를 꺾어서는 아니 된다는 신의같은 다분히 내면적이고 심정적인 공감대가 점점 다져지고 있는 것이다.
21세기가 되면 바보는 외국으로 가고 수재는 국내에 남아 공부하는 대학가의 학문풍토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적어도 인문사회과학분야에서는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김인회 <연세대교수 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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