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플러스] 달라진 외국계 시중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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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외국계 시중은행들의 영어 열풍이 수그러들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영어를 못 하면 낙오된다"며 너도나도 영어 배우기에 나섰으나 최근에는 '영어보다는 업무가 우선'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미국 투자펀드회사인 뉴브리지캐피털이 대주주인 제일은행의 경우 회사 지원으로 영어 강습을 받는 직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난해 제일은행의 영어 강습 인원은 모두 5백30명으로 2001년(8백87명)보다 40% 이상 줄었다. 강원경 제일은행 홍보팀장은 "영어를 배우느라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영업에 쏟는 게 낫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뉴브리지캐피털이 제일은행의 새 주인이 됐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당시 제일은행 임직원들은 외국인 행장이 오자 "영어를 못하면 짤린다"고 불안해 하며 대거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특히 당시 영어로 업무보고를 하느라 쩔쩔매기도 했다.

그러나 2001년 7월 부임한 로버트 코헨 행장은 "영어가 안 되는 사람은 통역을 대동하라"며 영어로 인한 업무 차질을 경계했다. 사내 동시통역사도 5명으로 늘렸다. 姜팀장은 "프랑스인인 코헨 행장도 영어가 제2 외국어여서 임직원들의 영어 스트레스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서장들도 이제는 외국인 경영진에 업무를 보고하거나 지시를 받을 때 동시통역사를 데려간다. 어설픈 영어 실력을 믿다 자칫 중요한 업무 지시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코헨 행장도 본부 부서장급 회의를 동시 통역으로 진행시키고 있다.

독일 코메르츠방크가 대주주인 외환은행도 사정은 비슷하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영어 몇 단어 더 외우는 것보다 우리말을 잘 사용하는 게 영업에 더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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