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류청론|복지사업에 민간역할 커져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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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제성장의 궁극적 목표가 국민 개개인의 복지증진이기 때문에 복지사회의 건설이 국가발전의 기본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하나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어떤 형태의 복지사회를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된다.
한편에서는 국민복지의 향상을 위해서는 경제 각분야의 능률이 향상되고 성장세가 가속화되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경제발전초기부터 분배문제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되면 경제성장을 못하게 되어 궁극적으로 국민의 복지를 향상 시킬 수 없다는 논리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일찌기 분배문제에 지나치게 역점을 둔 결과 경제성장을 하지 못한 스리랑카의 경험이 많이 인용되곤 한다.
그러나 빵을 크게 키워놓은후 이를 공평히 나누는 문제를 염려하자는 주장은 빵이 커지긴 하였으나 사화의 기존질서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분배문제를 계속 해결하지 못하고있는 많은 남미국가들의 경험을 살펴보면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렇게 볼때 성장과 분배는 결국 동시에 염려해야 하는 과제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세개은행등 국제기구에서 세계 여러나라를 비교 분석한 연구결과를 보면 한국은 성장과 분배문제를 동시에 해결한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즉 우리나라는 60년대초 이후 수출산업의 급격한 신장을 통한 고도성장 과정에서 소득분배가 크게 악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노동집약적인 수출산업의 신장이 고용기회의 확대와 근로자의 실질 임금상승을 초래하여 성장의 혜택이 전 근로계층에 고루 나누어 질 수 있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러한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한국내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분배구조가 매우 불균등한 것으로 생각하고 분배개선을 위해 정부가 획기적인 대책을 취해야한다고 믿고 있다. 이와같이 객관적인 사실과 많은 사람들의 인식간에 큰 차이가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평등의식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매우 높다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20세기에 들어와 근대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변혁을 체험했으며 이로 인해 일반 국민들의 평등의식은 모든 분야에 걸쳐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평등의식은 한편으로는 나도 열심히 일하여 남같이 잘 살아 보겠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으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자유경쟁사회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소득과 부의 불균형분포를 용납하지 못하고 이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함으로써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일반 국민의 평등의식이 높다는 사실은 비록 숫자적으로는 우리의 분배구조가 외국에 비해 나쁘지 않다 하더라도 분배문제에 계속 신경을 써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고 본다.
분배와 복지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회가 발전하고 소득수준이 향상될수록 소득이나 부의 불균등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며 특히 TV등 매스미디어의 광범한 보급은 경제구조를 소비지향적으로 전환시키고 저소득층의 상대적 빈곤감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히 정부재정의 복지기능이 제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총세출중 복지사업비중은 현재 약7%로 선진제국의 30%수준에 비하면 크게 낮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국방 및 사회간접자본 부문에서의 재정지출 소요가 워낙 크기 때문에 복지재정규모를 갑자기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국민소득이 향상됨에 따라 조세수입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늘어나는 조세수입의 상당부분을 복지부문에 투입한다면 이 부문에서의 정부역할을 큰 무리없이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추경예산을 편성함에 있어서 사회복지부문이 크게 강조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며 향후 예산편성에 있어서도 복지재정의 역할을 계속 증대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복지재정 규모확대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복지사업간의 우선순위와 복지사업의 추진방법이다. 예를 들어 현재 영세민의 생활안정을 위해 정부에서는 생활보호·의료보호· 취로사업·학비지원등 여러가지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외국의 경험을 통해 보면 영세민 구호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구호대상자를 공정히 선정하고 이들 영세민 개개인에게 맞는 적절한 구호사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근로능력이 충분히 있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보조금지급은 그로 하여금 의타심만 조장할 것이며 대상자 선정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면 각종 구호사업이 오히려 탈락계층의 불만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각종 영세민 구호사업은 이의 전달체계가 아직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못하고, 비전문가에 의해 기계적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사업의 실효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영세민 사업규모를 확대함에 앞서 사업이 효율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적절한 전달체계가 조속히 확립돼야 할 것이다.
우리의 처지에서 특히 강조돼야 할 것은 복지사업 추진에 있어서 민간의 역할이 강화돼야한다는 점이다. 우리사회에서 사회복지는 으례 정부가 도맡아 해야 한다는 의식이 만연되어 있다. 미국 및 서구제국은 물론 특히 이웃 일본에서는 지역사회, 각종 민간기관의 사회복지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우리도 이와같이 하기 위해서는 우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상부상조의 정신을 함양하는데 역점을 두어야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친척 또는 친구들간의 상호협조는 갈 이루어지나 자기가 잘 모르는 이웃을 돕는 풍토는 아직 조성되어 있지 않아 사회복지사업의 효율적 추진에 있어 큰 제약요인이 되고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도시지역의 반상회와 새마을조직을 지역복지사업을 추진하는 핵심체로 활용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돼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복지부문에서의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동시에 제고해야만 경제성장과 더불어 계층간 위화감이 없는 복지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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