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0)충성의 파국-제83화 장경근일기(1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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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60년4읠27일>
피곤하다. 세상은 어떻게 변해가려나. 이길밖에 없는가. 결국 우리는 이 지경에 오기까지 무얼했나. 지금와서야 무슨 일을 할수 있겠는가.
어제 아침에 이승만박사께서 대통령직도 사임한다는 녹음방송을 내보냈다. 오늘 국회에서 대통령의 사임서를 수리 의결했다. 「매카나기」 미대사가 경무대를 방문하고 송요독계엄사령관 주선으로 학생대표가 이대통령을 면회하고 사퇴를 요구한 일련의 사건이 있은 다음의 일이다.
정말 여기까지 오지 않고는 수습할 길이 없었나. 3·15 마산사건 직후에 이기붕의장의 부통령 당선사퇴, 선거내각 총사퇴를 통한 거국내각 구성, 자유당의 개편 등 과단성 있는 개혁을 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않고도 시국을 수습할수 있었다. 지금도 데모학생들이 계엄장병의 탱크에 올라가는 등 적대보다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이제는 없다.
이박사는 일생을 조국광복에 바치고 해방후 연합국에 의한 신탁통치, 공산오열분자의 파괴공작 등 혼란을, 극한 정국에서 반탁독립의 횃불을 들고 좌왕우왕하는 정치인들과 싸우며 국민운동을 일으켰다.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룩하고 미국의 원조를 받아 공산남침을 물리치는 동시에 강력한 반공국군을 건설하신 이승만박사다. 그분이 비록 이의장을 부통령후보로 한 무리가 있었고 그릇된 충성을 신임하여 민주주의에 실패했고 주위의 아부 농권에 포위되어 인의 장막안에서 민심을 바로보지 못했다는 과오가 있었다 하더라도 명예롭게 물러나지 못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나라의 기둥이 갑자기 무너지고 이런 혼란을 틈타 공산오열분자의 대한민국 전복공작에 우리 겨레가 냉정한 질서로 극복해 나갈수 있을 것인가 염려스럽다.
오늘처럼 헌법질서에 의하지 않고 시위앞에 정권이 타도되는 정변내지 혁명은 민주정치의 역사와 기반이 얕은 우리나라에서 먼 장래까지 습성화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미국무성에서 시위국민들의 불평이 정당한 요구라는 담화를 발표한 것은 아무리 우리가 원조에 의존하는 나라라해도 독립국의 정치에 대한 이례적이고 지나친 개입이라 아니할수 없다. 국민의 불평은 정당하다. 이것이 객관적 사실이기 때문에 이런 중대한 그 주권침해가 간과되고 세론도 아무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국민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것과 이를 고무했다해도 주권국가의 긍지를 손상했다는 두가지를 분열해 대처할수 있어야 국민이 냉정과 양식을 잃지 않았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 아닌가.

<60년4윌28일>
이기붕의장 일가의 죽음을 들었다. 이의장의 장남이자 대통령의 양자 강석군이 권총으로 가족들을 차례로 쏘고 마지막에 스스로를 쏘았다는 것이 비극의 최후를 전하는 얘기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강석군은 그럴수가 없는 성품이다.
이의장의 깨끗한 심정의 마지막 표현이라고 믿어야하는가. 치욕을 아이들에게 전승치 않으려 했다해도 강우·강욱까지 데리고가야 하다니…. 역사의 과보라해도 너무 냉혹하다. 주변사람들에 이끌려 과오를 범하기는 했지만 생전의 그의 양심, 그 깨끗한 마음을 생각할 때 그분의 잘못을 말하기보다 그분의 병약함이 정치인의 필수조건인 투지와 결단력을 그분으로부터 앗아간 결과라고 해야한다.
하오엔 이대통령이 경무대를 걸어서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져 이를 안타까와 하는 시민들이 경무대 연도를 메웠다는 소식이다. 부정선거 규탄이 대통령의 하야로 결과한 것은 아무래도 국민의 뜻에 대한 과잉반영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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