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살찌면「사치성 유학」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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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독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양의 교육선진국들이 한국유학생들에 대한 특별 규제 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보도되었다. 한국국민이면 적지 않은 모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 소식은 한편으로는 충격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교부의 공식집계로 유학생의수가 2만3백 명 정도라지만 거기에 외교관 및 해외파견근무 자, 최근 이민간 사람들의 자녀들 수까지 합친다면 한국계 유학생의 실제수효는 훨씬 더 많으며, 유럽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각급 수준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한국계 학생들에 관한 논의가 일기 시작한지가 한참 되기 때문이다.
대학을 포함한 모든 학교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등록금 없이, 또는 재단의 지원을 크게 받아 운영되고있는 나라들이 무한정으로 외국유학생을 받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이치다.
미국과 영국같이 교육체계가 중앙집권화 되어있지 않고 교육비에 대한 당사자 부담을 원칙으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국가정책 적 차원에서 어떤 규제 책이 채택되지는 않는 다해도 학교별로 보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규제가 가해질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교육, 특히 고급인력 배양에서의 외국의존도 가끔은 우리에게는 유학의 통로가 좁아지는 가능성은 해외 시장이 좁아지는 가능성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유학가는 사람들의 동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개개인의 자질이나 처지에도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유학생들의 일부는 분명히「도피성」또는「사치성」유학을 일삼는 사람들이라고 분류될 수 있다. 국내에서 제대로 된 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돈은 있기 때문에 외국으로 빠져나가 각종의 문제를 빚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이들의 수효란 그들이 내는 요란스런 잡음에 비해 그리 큰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유학생들은 국내에서 확보할 수 있는 교육과 연구의 기회에 한계를 느끼고 보다 나은 학문적 여건 속에서 전문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려는 우수한 학생들이다.
그 중에는 외국의 대학들이 학비가 없거나 싸고 혹은 장학금을 주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보아도 유학 가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또 상당한 수의 유학생들은 앞서 말한 두 가지 부류의 중간쯤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곧 경제력도 있고 잠재적 창의력도 있으나 획일화 된 국내의 교육체계 속에서는 자기들의 특성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낙오자 또는 이탈자가 되는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외국유학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한 사람들이다. 이민 가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자녀들의 교육을 이민의 주된 동기로 드는데서 중요한 사례를 볼 수 있으며, 실제로 국내에서 문제아로 취급받던 학생들이 새로운 성취동기를 발견하고 우수한 학생으로 둔갑하는 예가 종종 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유학을 감과 동시에 관습적인 보수성이나 소국적 태도를 버리고 강한 성취욕구를 발휘하는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동기나 처지는 다양하지만 유학생들 모두가 갖는 공통점은 그들이 국내에서는 채우기 어려운 교육적 욕구를 외국의 학교를 통해서 충족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유학생들의 동태란 국내의 교육적 현실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곧 국민이 가지는 교육적 욕구와 구매력에 비해 국내의 교육이나 연구 기관이 제공할 수 있는 교육의 질이나 수준이 떨어질 때 유학생의 비율은 늘어나게 마련이고 국가도 정책적으로 유학생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국내의 교육여건이 갖추어진 나라이면 구태여 여러 가지 댓가를 치르며 장기 유학을 갈 필요가 없는 것이고, 유학생이 생기는 것은 획일화된 평준화 정책이 과열과외를 낳은 것이나 비슷한 원칙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한국유학생에 대한 외국의 규제조짐이 보인다는 당혹스런 소식을 들으며 우려되는 것은 행여나 우리정부가 과외단속법을 만들던 것과 같은 부정적 방식으로 유학생문제를 해결하려 들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곧「사치성」「도피성」유학을 규제한다는 명분아래 건전한 유학의 길마저 막지 않을까 하는 염려다. 사실 지금까지의 우리의 유학생에 대한 방침은 개방과 폐쇄의 양극을 치달으며 장기적 안목의 어떤 일관성 있는 기준을 확립해 오지 못하고있다.
해방과 6·25직후의 개방과 격려정책이 차츰 폐쇄주의로 기울다가 70년대 유신체제 하에서의 한때는 거의 반동적인 폐쇄주의에 까지 이르렀었다. 그런가하면 외화사정이 조금 나아지자 유학생들에게 유학 자격의 선별도 거의 없이 등록금말고도 한 달에 생활비 조로 1천 달러나 되는 돈을 송금하도록 허용해줌으로써 실제로 「도피성」「사치성」유학을 조장하는 듯한 정책으로 바뀐 것이다.
그것이 이번에는 다시 폐쇄주의로 급선회하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인재의 양성이라는 국가적 차원의 고려로 보나, 교육에 대한국민의 권리라는 견지에서 보나 지금 현재의 우리가 갖추고 있는 교육과 연구여건 하에서 유학의 길을 막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분야에 따라서는 보다 많은 유학생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세계 어디고 가장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학은 필요한 교육자원의 해외유출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볼 때 무조건 개인의 처분에만 맡겨 놓을 수는 없는 문제다.
유학의 기회는 우선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서부터 선별적으로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강화되어야하며 자격 미달 자들이 외국에 가서 문제를 일으킴으로써 자격 있는 사람들의 기회마저 상실시키는 부작용이 일어나서는 안되겠다.
그러나 유학생 문제에 대한 보다 장기적인 대책은 해외로 흘러나가는 교육자원이 국내의 학원들로 흘러들어 올 수 있도록 길을 터 줌으로써 우리의 대학들을 살찌게 하고 유학의 필요성을 감축시키는 일일 것임은 더 말 할 것도 없다. 이인호<서울대교수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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