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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사진관] 그린란드① - GreenLand? Colorful Lan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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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를 취재하기 위해 북극권의 그린란드를 여행했습니다. 핀란드와 아이슬란드를 거쳐서 가는 머나 먼 여정이었습니다. 한국과 시차가 11시간이니까 지구 반대쪽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린란드의 수도는 누크(Nuuk)입니다. 북위 64도 상의 도시로 저녁 10시 반이 돼야 해가 졌습니다. 연중 꽝꽝 얼어 있는 줄 알고 긴장했는데 5월은 나름 여름이라 아침 기온이 영상 4~5도쯤 되더군요. 인구 1만7천의 조그만 도시로 가장 작고 가장 북극에 가까운 수도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랑 닮은 사람들이 이 땅의 오랜 주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덴마크의 자치령이 되어 있지만 이누이트(Innuit)라고 불리는 원주민이 태고적부터 얼음에 덮인 이곳에서 살아왔습니다. 몽골 초원에서 베링 해를 건너고 북미 대륙을 횡단한 다음 얼어붙은 바다를 건너서 그린란드로 들어갔겠지요. 그들의 엉덩이엔 푸른 반점이 있습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옆집 아저씨 아줌마 같아서 핏줄이 찡, 반응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집의 색깔이었습니다. 모든 건물이 빨갛고 노랗고 파랬습니다. 주택이 밀집된 곳을 멀리서 바라보면 화려한 모자이크 같았습니다. 그래도 색을 선택한 질서는 있을 것 같았습니다. 현지 공무원에게 물어보니 역시 그랬습니다. 덴마크인이 들어온 18세기부터 건물의 기능에 따라 다른 색을 칠했다는 것입니다. 빨강은 상업용, 노랑은 병원, 파랑은 생선공장 등등.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그와 같은 구분은 거의 사라졌다고 합니다. 건축가가 임의대로 색을 선택한다고 하네요. 그래도 아직 옛 전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서 병원 종사자의 아파트에 노란색 띠를 두르기도 한답니다.

 건물을 기능별로 다른 색으로 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문자가 없던 이누이트에게 덴마크 사람들이 건물의 기능을 알려주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눈이 많이 내리면 길이 사라지고 지형도 변해서 어느 건물이 학교이고 병원인지 헷갈리기 때문에 색을 다르게 했다고 설명합니다.

일 년 내내 하얀 눈에 덮여 있는 지루한 풍경에 생동감을 주기 위해 집집 마다 다른 색을 칠했다고 설명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런 해석들은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어쨌든 그린란드는 모든 집들이 다른 옷을 입고 있어서 이름과 달리 ‘컬러풀’합니다. Green Land? No, Colorful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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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비탈면의 주택가입니다. 파스텔 톤과 강한 원색의 집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발랄한 느낌을 줍니다. 눈이 많이 내리면 색색의 오각형 또는 삼각형만 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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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크 옛 도심 풍경입니다. 가운데 저택은 1907년 지어졌는데 의사가 사용한 집이기 때문에 노란 색입니다. 뒤쪽 바위 아래 건물도 1967년까지 병원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사회복지시설로 용도가 바뀌었습니다. 여전히 보건관련 기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색도 노랑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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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바라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제비둥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집입니다. 노란 집이지만 병원은 아니고 1930년대에 근로자들의 거처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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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푸른 하늘을 닮은 작고 귀여운 집입니다. 이 지방에 흔한 순록의 뿔을 외벽에 장식으로 달았습니다. 건물 아래 빠져나온 검은 관은 하수관입니다. 그린란드의 땅은 대부분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상하수도관을 매설하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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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 파견한 고등판무관의 저택입니다. 앞의 흰 게양대에는 덴마크 국기가 펄럭이고 있습니다. 1832년에 처음 지어져 여러 차례 변형이 이루어진 건물은 푸른빛이 도는 회색으로 북극의 서늘한 대기와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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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진의 풍경을 반대쪽에서 본 모습입니다. 누크의 고풍스런 건물들 뒤로 현대식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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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계 노르웨이 선교사 ‘한스 에게데’가 1721년 그린란드 누크에 도착해 식민지를 세운 이래 그린란드는 덴마크령이 되었습니다. 1979년 자치권을 획득했으며 2009년부터는 외교·국방·재정 분야를 제외하고는 국정 전반에 걸쳐 자치권을 향유하고 있지요. 돌로 튼튼하게 지은 이 저택은 1728년에 지어져 에게데 가족이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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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녹색과 파란 집, 빨간 자동차와 보트. 심심한 색은 그린란드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겨울이 되면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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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거칠게 쌓은 이 작은 집은 백 년 전에 석유류 보관 창고로 지어졌지만 지금은 보호 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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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노란 이 건물은 1946년에 술도가와 대장간 용도로 지어졌습니다. 굴뚝은 처음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빵집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박물관 수장고로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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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부속 건물로 개집보다 조금 더 큰 규모지만 건축적으로 소홀한 구석이 없습니다. 본관 건물과 같은 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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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색상은 주로 상업용 또는 우체국이지만 창틀을 노란색으로 하면 학교의 고유 색상이 됩니다. 대칭형의 이 장대한 건물은 교육대학 본관인데 도시의 대표적 건축물이라 시 문장에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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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의 집들이 모두 화려한 원색은 아닙니다. 차분하게 하얀 집도 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면 집은 사라지겠죠. 오른쪽 깃발은 그린란드 국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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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파랗고 빨간 집에 살던 그린란드 사람들도 안식에 들면 모든 색을 벗어던지고 하얀 십자가 하나 잡고 긴 잠에 빠져듭니다.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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