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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부실 조선사에 돈 퍼준 산은·수은 잘했다는 감독당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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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뒤늦은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괴스럽다. 전문성이 부족한 데다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했던 정부·채권단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조선업 불황이 가져온 수주절벽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그런 위험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지원을 거듭해 손실을 눈덩이처럼 키운 국책은행과, 그런 국책은행을 잘했다며 성과급 잔치를 벌이도록 한 정부의 깜깜이 평가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한때 세계 4위였던 STX조선해양의 사례를 보자. STX조선의 붕괴가 본격화한 것은 2013년이다. 이때라도 채권단은 정신을 차렸어야 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으면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손실을 최소화해야 했다. 그런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거꾸로 갔다. 2013년 8월부터 STX에 4조5000억원을 추가 지원했다. 급기야 지난해 시중은행들은 일제히 발을 뺐지만 산은·수은은 끝까지 남아 지원을 계속했다. 핑계는 있다. 정치권이 지역경제 침체와 실업 대란을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 정부도 은근슬쩍 동조했다. 결과는 불문가지. 산은의 부채비율은 800%를 넘어섰고, 수은은 640%까지 치솟았다.

그런데도 금융위원회는 경영평가에서 산업은행에 2013·2014년 연속 A등급을 줬다. 산은 회장과 직원은 각각 100·90%의 성과상여금을 챙겼다. 금융위는 수은에도 2013년 A등급을 줬고 2014년엔 모뉴엘 사기 사태와 경남기업·성동조선해양 부실까지 겹쳤지만 B등급을 부여해 70%의 보너스를 챙기도록 했다. 덕분에 평균연봉이 산은은 9450만원, 수은은 9242만원으로 연구기관을 제외하면 전체 공공기관 중 3·4위다.

정부는 뒤늦게 산은·수은에 강력한 자구안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간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서별관회의를 통해 부실 조선사에 대규모 자금지원을 결정한 것도 청와대 참모진과 장관들 아닌가. 한심한 국책은행도 문제지만 부실 감독을 방조하고 부추긴 정부·감독당국이야말로 진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