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민생활 안정을 위한 캠페인|「실탄」이 모자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제기랄, 실탄이 있어야 전쟁을 하지』-.
서울 K경찰서 양형사(41)-. 길가에 낡은 포니 승용차를 세워놓고 썰렁한 호주머니를 뒤지며 투덜거린다.
지난 5윌9일, 관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뒤쫓아 부산으로 내려간지 벌써 닷 새째.
같은 경찰서 김형사(39)와 함께 타온 출장비 12만원(3박4일분)이 바닥나 객지방이 모래알 같다.
숙박비1만8천원 (6천원×3박), 식비2만2천원(5천5백원×4일), 교통비1만원(고속버스 왕복)…수사비 단돈1만원-.
출장비 명세서를 훑어본 양형사는 하루 2천5백원 꼴의 쥐꼬리 수사비에 혀를 찬다.
서울을 떠나올 때 사건 한번 잘 해결해준 연줄로 가끔 도움을 받아온 J상사 L사장에게20만원을 구걸(?)하고 강남에서 큰 음식점을 경영하는 고교동창생의 스페어 승용차를 반강제로 징발했는데도 부산바닥을 3∼4일 헤매다보니 빈털터리 신세가 돼버린 것.
결국 그는 얼굴을 붉히며 공중전화통에 매달려 자갈치에서 생선장사를 하는 먼 친척동생에게서 10만원을 얻어 겨우 궁기를 면한다.
순간 장거리박치기(출장)에 걸릴까 눈치보며 몸을 도사리던 동료형사들의 곤혹스런 몰골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중복인 지난달 30일 하오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택시정류장.
『택시, 택시』-. 땀에 전 점퍼차림의 서울시경 치기반 베테랑 이경장(45)은 택시를 타고날아버린 일꾼(소매치기) 2명을 뒤따르며 목이 멘다.
현장을 잡기 위해 땀흘린 3시간의 추적이 물거품이 돼버린 순간이다.
택시를 잡으려던 이경장이 주머니를 뒤진다.
주머니속 전 재산은 토큰 2개와 1천원짜리 1장.
새벽 집을 나올 때 부인 눈치보고 타온 1만5천원이 해거름이 지기 전에 벌써 바닥났다.
『이 하꼬방도 없으면 짜브(형사) 노릇도 끝장이지. 방2칸 세주고 수입 잡는 10여만원이기름이여.』
자정 가까이 변두리 달동네 포장마차에서 닭똥집 안주에 소주로 얼큰한 이형사는 택시비가 없어 일꾼을 놓쳐버린 일을 되씹으며 분통을 터뜨린다.
서울 S경찰서 최형사(42)-. 도범검거실적이 형편없다는 형사계강의 불호령에 풀이 죽었다.
강력범 소탕이 내린 지 벌써한달. 소매치기 1명, 절도 2명을 잡은것이 고작이다. 지난 6월 학생데모를 막다 날아든 돌에 오른쪽 허벅지를 맞아 불편한데다 4∼5년 부려먹던 끄나풀마저 행방을 감춰 기댈 기둥조차 없다.
『낑을 풀어야 새 끄나풀이 달려오지. 이제 짜브노릇도 끝장인가 봐』
새벽 출근길에 물놀이 가는 이웃이 부러워 바가지긁는 미련한 아내에게 화풀이한 것이 후회스럽다. 『급한 때 쥐약도 먹어야지』최형사는 어려울 때 늘 도와주는 관내 S사장을 찾아가려다 발길을 돌린다.
평소 민완으로 소문난 N경찰서 M형사가 고소인으로부터 1백18만원을 받았다가 은팔찌를차고 불명예제대한 처량한 몰골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일선 외근형사들이 받는 한달 활동비는 현재 서울등 6대도시가 1인당 7만5천원 (시지역인 B급지 6만5천원, 군이하지역인 C급지 5만5천원)으로 하루 2천5백원꼴.
그나마 이것도 81년 하형사 통장절취사건 이후 50% 오른 것이다.
『형사노릇 오래하면 쪽박차기 알맞지요. 수사비가 신발값도 안되니.』
하루 1만원, 한달에 30만원의 활동비만 지원해주면 구걸없이 뛰어다닐 수 있다는 것이수사경찰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전국경찰의 연간 예산 6천억원 가운데 수사비용은 1%도 안 되는 50여억원. 이 돈으로수사활동비도 주고 장비도 구입하고 조서용지 등 수사재료도 사들여야한다. 『군인이 적과 싸우듯이 우리도 강·절도라는 시민의 적과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실탄 없이 싸울 수없지 않습니까?』
서울시경 한 수사간부는 정부차원에서의 수사비 지원을 호소한다.
『인력도, 장비도 부족하지만 미·일·영 등과 같이 필요한 만큼은 수사비를 지급하고 사후에 정산하는 제도가 절실합니다』 <김종선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