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7명 “20대 국회 재의결 가능” … 8명은 “개정안 합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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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4 면

황교안 총리(왼쪽에서 둘째)가 27일 국회법 개정안 재의 요구안을 의결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법제처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 개정안에 대해 대다수 헌법학자들이 합헌 의견을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뉴시스]

8대 1 국회법 개정안 합헌, 7대 3 20대 국회 재의결 가능.


상시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재의 요청)한 데 대해 헌법학자들 사이에선 “개정안은 위헌이 아니고 20대 국회에서 재의결할 수 있다”는 의견이 더 우세했다. 중앙SUNDAY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결정 직후 10명의 헌법학자에게 의견을 물어본 결과다. 정부·새누리당의 입장보다 야당의 시각에 가까운 주장들이 다수여서 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해석 논란이 거세게 불붙을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27일 국무회의를 열어 “상시 청문회는 헌법에 근거를 두지 않고 행정부·사법부 등 국가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신설한 것이므로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법제처의 판단에 근거해 재의를 요청했다. 법제처는 또 “국회법 개정안은 19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 폐기된다”고 판단했다. 거부권이 행사된 법안을 재확정하려면 국회에서 ‘재적 과반 출석, 출석 3분의 2 찬성’으로 재의결돼야 한다. 29일 임기가 끝나는 19대 국회 일정상 임기 내 재의결은 불가능하다. 법안이 19대 국회 만료와 함께 폐기되고 20대 국회에서 재의결이 불가능하다는 법제처의 주장이 맞다면 국회가 이 법안을 다시 만드는 길은 새 법을 제출해 상임위(운영위)와 법사위에서 다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본회의 재의결보다 훨씬 더 험난한 길이다. 그래서 야당은 ‘20대에서 재의결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국회 연속성 vs 폐기가 원칙본지가 의견을 구한 헌법학자 10명 중 7명은 야당의 주장대로 20대 국회에서 재의결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법제처는 ‘폐기’의 판단 근거로 헌법 제51조를 내세웠다.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은 회기 중에 의결되지 못한 이유로 폐기되지 아니한다. 다만 국회의원 임기가 만료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조항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가 이 조항을 근거로 ‘20대 국회 재의결 불가 판정’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봤다.


정형근 경희대 교수는 “조문을 보면 ‘의결되지 못한 이유’라고 돼 있다. 이번 사례는 의결이 됐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국회의 정당한 입법권 행사를 가로막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헌법에서 ‘대통령의 재의 요구’와 ‘국회의 재의결’ 사항은 제4장 1절의 ‘대통령’ 관련 항목이 아닌, 제3장 ‘국회’ 항목에 적혀 있다. 즉 대통령의 입장이 아닌 ‘국회 입법권’의 입장에서 해석해야 한다”며 “이번처럼 대통령의 재의 요구로 국회가 정당한 입법권을 행사할 수 없게 만드는 건 헌법의 취지에 위배되므로 20대에서 재의결하는 것이 맞다”고 해석했다.


황도수 건국대 교수는 “헌법 51조 내 ‘단서조항’(다만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이 왜 생겼느냐. 19대 국회가 처리하지 못하고 쌓아놓은 법안을 20대가 떠안아야 하는 ‘내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겼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국회 대 행정부라는 ‘기관 대 기관의 문제’고 행정부가 대통령이 바뀌어도 대외적 연속성을 지니듯 국회도 연속성을 갖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도 “19대 국회와 20대 국회가 연속성을 가진다고 봐야 하므로 20대에서 재의결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폐기가 맞다는 학자들은 헌법 51조 조문의 내용에 충실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는 “거부권이 행사된 법도 51조상 ‘의결되지 못한’ 법률안으로 봐야 한다. 법률안이나 의안은 국회 임기가 끝나면 다 폐기하는 게 원칙”이라고 밝혔다.


한국 헌법학계의 석학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재의 여부에 대해선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으나 조문을 좁게 해석해 헌법 ‘단서조항’의 취지를 살린다면 재의결권은 승계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김종철 연세대 교수는 20대에서 재의결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히면서도 “이번 사안은 헌법이 침묵하는 부분(사각지대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정해진 정답은 없다. 20대 국회가 정무적 판단을 통해 새로운 선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국회 고유 역할 vs 악용 소지 있어 법제처는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헌법에 근거를 두지 않은 상시 청문회를 통해 국회가 권력분립 원칙을 침해할 것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위헌 입장인 허영 교수와 입장을 유보한 정재황 성균관대 교수를 제외한 8명의 학자는 개정안이 위헌적이지 않다고 봤다.


황도수 교수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란 건 합의체 기관인 국회가 국가 최고기관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전제했다. 그는 “대통령이 국가원수인 건 국가를 대표할 이가 필요하기 때문일 뿐인데 ‘대통령과 행정부가 국회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공화정의 원리를 모르고 헌법 제1조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청문회라는 건 사실관계 확인, 정보 수집을 위해 최고기관인 국회가 당연히 행사할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상시 청문회가 헌법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김종철 연세대 교수는 “헌법 근거를 따질 필요 없이 국회가 원래 그런 역할을 하게 돼 있는 게 법치주의다. 모든 국가권력은 국회의 입법행위로부터 나오고 국회가 행정부의 집행을 감시하는 것 역시 법치국가에선 당연한 논리”라고 반박했다. 정형근 교수도 “헌법에 근거가 없어도 국회가 행정부를 통제하는 건 당연히 헌법 질서에 맞는 것”이라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현대 국가는 행정권이 비대해져 행정권력의 오·남용을 통제할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므로 더더욱 위헌이 아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익명을 원한 헌법학자 A 교수는 “인사청문회 도입 때도 행정부의 발목을 잡는다며 위헌이란 주장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청문회 덕택에 문제가 될 인사들을 미리 걸러내고 있지 않나. 청문회를 통해 오히려 행정부가 큰 사고를 칠 가능성을 미리 잡아내는 예방적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수적 성향으로 알려진 김상겸 교수도 합헌 입장에 가까웠다. “정쟁에 활용하는 등 운영상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과잉 입법 논란도 제기할 수 있지만 청문회 자체를 딱 집어서 위헌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견해를 밝혔다.


법제처는 헌법에 없는 상시 청문회로 인해 헌법상의 국정조사가 유명무실화될 것도 우려했다. 이에 대해 김종철 교수는 “청문회는 개별 상임위가 일상적으로 의견을 청취하는 행위다. 또 국정감사나 국정조사는 청문회로는 부족한, 여러 상임위를 포괄하는 사안들을 강도 높은 차원에서 조사하는 것이다. 특별한 권한이기 때문에 헌법에 따로 명문화해 놓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허영 교수는 유일하게 개정안의 위헌성을 지적했다. 그는 “거의 모든 현안에 대해 국회가 청문회를 열 수 있게 한다는 것인데 우리 국회의 과거 행태로 봐 이를 악용·남용할 소지가 있다고 행정부가 판단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라며 “견제와 균형의 메커니즘을 뒤흔드는 것이니 위헌성 주장의 근거가 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반면 임지봉 교수는 “청문회를 열어 공무원을 부르려면 해당 상임위 내 안건조정위를 통과(6인 중 4인 이상 찬성)해야 하는 등 여당의 협조가 필요하다. 여당 소속 상임위원들이 부를 필요가 없는 공무원·기업인들을 출석시키는 데 동의하겠나. 기우에 불과하다”고 허 교수와 다른 주장을 폈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상시’가 될 수 없으므로 상시 청문회는 틀린 말이고 ‘청문회 활성화법’이 맞는 명칭”이라고 주장했다.


허 교수는 또 정부 주장과는 다른 시각에서 위헌성을 지적했다. 그는 “국회-행정부 관계가 아니라 국회-국민의 관계에서 위헌성이 발생한다”며 “국민이 부여받은 의무는 납세·병역 등 헌법에 규정돼 있는데 국회가 부르면 청문회에 나와야 한다는 ‘새로운 의무’를 국민에게 부여하는 꼴이며 이는 국회 입법권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형근 교수는 “청문회는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현안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므로 오히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 주는 수단”이라는 반대 의견을 내놨다.


“상시 청문회를 가능케 하는 대신 국정감사를 폐지하자”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재안 역시 위헌적이란 주장도 나왔다. “헌법에서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할 수 있다고 명기하고 있는데 하위법인 법률로 이를 폐지할 순 없다”(임지봉 교수)는 것이다.


이처럼 헌법학자들의 평균적 견해와 법제처의 판단 사이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법제처는 당초 ‘헌법학자 등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검토해 위헌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이 방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 임지봉 “내가 법제처에 한 얘기 공개하라”법제처 내부 관계자는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은 재의 요청의 논리를 점검하는 데 참고했을 뿐 그 의견에 따라 최종 입장을 결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며 “정부 각 부처의 의견을 종합해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봉 교수는 “내 주변의 저명하다는 헌법학자들에게 물어봤는데 위헌이라고 말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철재·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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