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사태는 학원을 떠났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부와 민정당은 학원의 안정을 위해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소식이다.
학생들의 과격한 시위행위에 대해 학교당국에 강력하게 책임을 묻는등의 방침을 통해 「좌경의식화」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의도라 한다. 지난봄의 「불온서적」 압수선풍 이후 정부가 취해온 일련의 조처들, 특히 최근 서울대의 총장이하 보직자들에 대한 문책인사로 보아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강경선회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으며 새로운 「학원안정법」 이 제정될 기미가 보인다는 소식도 이제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닌 듯 싶다. 다만 터질 듯이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할 뿐이다.
학원시태라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느낌은 대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면 가져온지가 오래다. 새로운 법이 제정됨으로써 대학의 정상화에 도용이 된다면 건전한 시민의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반겨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문제는 그러한 법의 제정이 과연 대학과 사회의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역효과를 낼 것인가 하는데 있다.
표피적으로만 본다면 학생운동의 표출양상은 재작년 말 이른바 학원자율화 정책이 채택된 후 훨씬 더 격렬해지고 정치화되었으며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학원에 대한 유화책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성인의 집단임을 자처하는 대학생들의 동태와 같은 복합적인 사회현상을 그러한 단순 논리적 인과관계로 설명하고 통제할 수 있을까? 만약에 이른바 자율화 정책이 채택되지 않았던들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지금보다 더 안정된 길을 걷고 있었을까? 유신체제하에서 일련의 긴급조치가 발동되었던 경과는 무엇인가? 이제야 보다 선명한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우경화」 「폭력화」의 뿌리는 그때 내려진 것이 아닌가?
정부에 대한 비판의 선에서 끝나지 않고 자유와 민주를 이상으로 하는 우리의 사회체제 자체를 폭력혁명을 통해 전복시키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표명하는 소수의 불순세력을 학원에서 제거시킴으로써 대다수의 선량한 대학인들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이론적 차원에서 높이 삼직하며 그러한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는 일에 국민들이 호응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의 행정책임자나 교수들에게 정치적 구호를 내거는 학생들의 시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으로 효과가 달성될 수 있을까? 학문적 무능이나 학내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항의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학교에 묻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미 70년대부터 실시되어온 지도교수책임제니, 이데올로기 교육이니 하는 것이 역효과밖에는 발휘하지 못했으며 교수들을 시위하는 학생들의 앞에 불러내는 빈도에 비례해서 그들의 권위는 실추되었음을 지난 10여 년의 경험에 비추어보아 이제는 정부도 깨달았음직하다.
학교가 정치적 불온세력의 소굴이 되고 사회가 학생들의 소요로 불안과 혼란에 허덕여도 교수들은 모른척하며 상아탑에 안주해야 된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교수들은 그들의 신분과 능력에 어울리는 방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사회에 기여할 때만 큰 공헌을 할 수 있고 학원의 안정에도 결과적으로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교수는 지식인이요, 학자와 스승의 자격으로서 학생들 앞에서 권위를 지닐 수 있는 것이지 군대의 사령관 같은 지휘력을 발동할 수는 없는 존재다.
대학생들은 어린이가 아니며 대학에 입학할 때면 이미 가정·학교·사회에서의 경험과 교육을 통해 형성된 심성과 지적 판별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앞에서 교수가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첫째는 학문적 수월성, 둘째는 인격적 모범을 통해서이며 마지막으로 교수단의 일원으로 그들이 가지는 통제력, 예를 들어 성적을 매기고 상벌을 가할 수 있는 힘을 통해서다.
학생들과의 교류에서 교수는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서만 힘을 가질 수 있으며 그들의 언행이 사리에 어긋나거나 확신을 동반하지 못한 것임이 드러날 때 그들의 권위는 잠시도 유지되지 않는다. 또한 확신을 수반하지 않는 언행, 예를들어 금력이나 강권에 의해 조종되는 행위는 연출효과를 가지기 어려운 것이 비판의식을 활력소로 하는 대학 같은 지식인 사회의 특성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해 지금 거론되고 있는 학원사태란 이미 대학의 테두리를 벗어난 정치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사태를 통해 제기되는 문제들의 성격이 무엇이냐에는 관계없이 단순히 문제를 제기하는 주역들이 학생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교수나 학교당국에 온 책임이 전가되는 제도적 장치가 지금보다도 더 강화될 때 교수들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형식적으로는 순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직적 행정력이나 물리적 힘 앞에서는 학자나 교육자가 한낱 기생충 같은 존재로밖에는 취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만이 발휘할 수 있는 특수한 힘이 학원의 안정, 사회의 안정을 위해 쓰이지는 못할 것이다. 대학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진정한 의미의 교수는 존재하지 못하는 진공사태가 널려 번져가고 있으며 새로운「대학안정법」은 그에 더욱 기여할 것이 틀림없다.
대학의 안정, 사회의 안정을 바라기로는 대학교수들처럼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그들의 이해관계와 지식인으로서의 성향 모두가 그렇게 되어있다.
그러한 간절한 열망이 자발적으로 효과 있게 발로될 수 있는 길이 점점 더 차단됨으로써 지식인의 이반이라는 무서운 현상이 우리사회에 더 이상 만연되는 비극이 벌어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