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아 위해 수화까지 배운 ‘두 번째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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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이춘경(54·경기도 안산시·사진)씨는 10년 전 준영(14·가명)이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자그마하고 빼빼 마른 데다 이는 다 썩고, 밤낮으로 긴장한 채 살아서인지 온몸이 발바닥까지 뻣뻣하게 굳어있었어요. 성한 데가 없었죠.”

노숙하던 청각장애인의 아들 돌봐
친엄마 만날 때마다 통역사 역할
가정위탁 유공자로 오늘 장관 표창

아이는 아빠의 폭행을 피해 집을 나온 엄마를 따라 지하철역 등에서 노숙 했다. 그러다 가정위탁센터를 통해 이씨 가족에게 맡겨졌다. 이씨는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여유가 생겼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어 위탁가정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준영이는 청각장애인 엄마와 단둘이 살다 보니 또래 아이보다 늦됐다.

“말은 하는데 인지 능력이 떨어졌어요. ‘나무’라고 말해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죠.” 이씨는 준영이를 데리고 부지런히 심리 치료·놀이 치료를 다녔다. 준영이와 12살 터울인 딸은 남동생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이씨는 그러면서도 준영이가 친엄마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아이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직접 수화를 배워 둘 사이의 통역사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준영이가 지금처럼만 밝고 행복하게 자라주면 좋겠다”고 웃었다.

이씨는 20일 ‘제13회 가정위탁의 날(5월 22일)’ 기념식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수상한다. 이 자리에선 이씨처럼 사랑으로 위탁아동들을 길러낸 ‘두 번째 엄마’ 등 가정 위탁 유공자 17명이 표창을 받는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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