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고교 설립기피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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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년도 서울시내에 10개 사립고를 새로 설립하려던 시교위의 계획이 차질을 빚고있다는 보도는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말로는 사학의 육성이 국가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구두선처럼 외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사학에 대한 일방통행식인 지시와 간섭만 일삼은 지금까지의 정책에 비추어 그것은 당초부터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다.
서울시내만 해도 내년에는 중학졸업생이 1만5천명이 늘어난다. 졸업생 거의 전부가 고교에 진학하는 현실에서 적어도 10개의 사립고 신설이 필요하다. 국가재정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간투자를 유치, 고교10개를 지으려했으나 신청자가 겨우 한 명밖에 없으니 어쩌겠느냐. 말하자면 이것이 서울시교위의 당면 고민거리인 것이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고 일부 비양심적인 사학경영자 때문에 잡음도 적지 않았으나 우리나라 교육에 끼친 사학의 공로는 누구도 부인 못한다. 대학의 75%, 중등교육의 절반 가량을 사학이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마디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중·고교평준화 시책이후 사학에 대한 투자가 국·공립 수준에는 이르러야 한다는 논의에도 불구하고 실제정책은 사학을 진흥시키기는 커녕 위축시켜 왔다는 평가마저 낳아왔다.
막대한 교육투자를 정부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어느 나라건 민간자본이 사학에 투자되도록 장치를 해놓고 있다. 사학에 대한 기부금에 대해서는 면세를 해준다든지 사학의 재산처분에 대해서는 세제혜택을 준다든지 하는 조치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학에 대한 투자유인의 확충을 비롯해서 자율의 폭을 넓혀주어야 한다는 소리는 오래 전부터 나왔지만 실제 그러한 요구는 시책에 반영되지 못했다.
사학에 대한 세제혜택문제는 아직까지 거론단계에 머물러 있고, 행정관청의 학교에 대한 간섭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등록금만 갖고는 학교운영도 하기 어려운 곳이 많아 재단에서 꼬박꼬박 적자를 메워주는 곳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재단이사장은 교장이 될 수 없다는 등 현행 교육법상의 독소조항 등으로 학교 운영마저 재량껏 못한다는게 대다수 사학경영자들의 불만이 되어왔다.
75년까지만해도 개인이건 기업이건 학교에 대한 출연금에 대해서는 면세를 해주었다. 그런 혜택이 없어진 다음 사학을 세운 사람은 손으로 꼽을 만큼 몇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육영사업에 뜻이 있다해도 손해볼 것이 뻔하고 그렇다고 학교경영자로서 권위도 서지 않는 처지에 학교를 새로 설립하려 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학설립희망자가 없다해서 고교신설을 포기할 수는 없고 따라서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가재정으로 넘어온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등 대도시의 상대적인 고교수용능력 부족은 중등교육이 해결해야할 초미의 과제다.
고교의 수용능력이 부족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지방 같으면 고교생이 될 수 있는 학생들이 학업의 중도포기를 강요당한다면 이는 교육의 기회균등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어차피 앞으로 전개될 고도산업사회에 대비하려면 교육의 양적인 팽창 못지 않게 질의 고도화가 요구된다. 교육의 질은 결국 교육에 대한 투자에 의해서 보장되며, 그러려면 민간자본의 교육참여 기회를 과감하게 늘려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사학육성이란 과제는 그와 같은 시각에서 접근되고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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