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스토리 알리고, 청년들 새 점포 열고…송정역시장의 ‘회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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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송정역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지난달 14일 새로 문을 연 점포들을 둘러보고 있다. 이 시장은 1970~80년대 모습을 재현하기 위한 사업을 마치고 재개장했다. [사진 김호 기자]

지난 17일 오후 8시30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1913송정역시장’ 입구. KTX 송정역사 맞은편에 위치한 시장 곳곳에서 스마트폰 플래시가 터졌다. ‘1913 송정역시장’이라고 적힌 노란 조명과 상점 한쪽 벽면에 설치된 시계 조형물을 배경 삼아 ‘인증샷’을 찍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1913년 연 광산구 전통시장
광주창조센터, 새단장 주도
전통+현대 매력, 젊은 층 몰려

주로 20~30대인 손님들은 유명 관광지에 온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장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낡고 오래됐지만 깔끔하게 꾸며진 상점들 사이에선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빵집과 꼬치구이 가게 등 음식점 앞에는 야식을 먹기 위한 사람들이 길게 늘어섰다. 오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활기를 되찾은 송정시장의 모습이다.

103년 역사를 지닌 송정역시장이 광주지역의 새 명소로 뜨고 있다. 시장의 역사와 전통은 유지하면서도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현대화를 한 결과다. 새단장을 한 지 한 달 여 만에 블로그 등을 통해 소문이 나면서 타지역의 관광객까지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원래 이 시장의 이름은 ‘송정역전매일시장’이다. 1913년 문을 연 이후 광산구지역의 대표시장으로 활황을 누렸으나 90년대 이후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다. 깔끔하고 편리한 시설과 다양한 상품들을 앞세운 대형마트들이 생겨나면서다. 낡은 건물과 어두침침한 분위기로 경쟁력을 잃은 시장은 인근에 사는 주민들만 이용하는 동네시장으로 전락했다. ‘당장 문을 닫는다’고 해도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을 정도였다.

황폐화된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현대자동차그룹이 상인들과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위한 협약을 맺고 공사를 진행했다.

새단장을 마친 시장은 지역의 명소로 거듭났다. 시장이 가장 번성했던 1970~80년대 모습을 최대한 살린 게 특징이다. 세월의 흔적을 지닌 오랜 상점들에는 깔끔한 간판들이 설치됐다. 각 상점에는 손님의 관심을 유발하는 이야기들도 담았다. 주인이 처음 가게 문을 열게 된 계기와 장사 철학 등을 인쇄해 가게 유리문에 부착하는 식이다. 각 상점 앞에는 ‘1920’ 등 숫자가 적힌 연도석을 설치했다. 상점들이 문을 연 시기다.

상인들의 세대 구성에도 ‘전통’과 ‘현대’의 결합이 이뤄졌다. 청년들이 점포 17곳의 문을 열고 창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주로 호떡과 빵·꼬치구이 등을 파는 이들은 총 50여 개 점포가 몰린 시장의 주축이 됐다. 시장을 찾는 주된 고객이 20~30대 젊은층이 된 것도 이들의 역할이 컸다. 방앗간 주인 류건용(50)씨는 “젊은 사람들이 간식을 먹기 위해 가족과 함께 시장에 왔다가 자연스럽게 장을 보게 된다”며 “젊은이들 덕에 시장이 새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배석용(67) 상인회장은 “하루 방문객이 200여 명에 불과했던 시장에 외지인을 비롯한 수천 명이 몰려들고 있다”며 “쇼핑을 온 손님들에게 좋은 추억까지 선사할 수 있는 명소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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