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본을 너무 모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최근 일본의 서점들은 대개 한국 관계 서적 코너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 여행 안내에서부터 성 연구나 정치권력의 분석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시각으로 한국을 들여다보는 책들이 진열되고 있다. 1년여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책방 풍경이다.
과거의 한국 관계 책들이 체제 비판 일변도이거나 훈계조의 논설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지금은「본대로 느낀대로」의 위치에서 한국을 조망하는 스타일로 바뀌어져 가고 있다.
지난 2월23일 동경에서 열린 조선사 연구회의 논문 발표회는「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한국을 알려는 참석자들의 열기가 대단하다는 점에서였다. 50대의 직장인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의 한국관을 피력하는 장소였다. 4백명의 회원 가운데 한국 관계 논문을 발표할 수 있는 사람이 1백명을 훨씬 넘었다.

<연구 부족 지적도>
지난 20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일본과 정치적·경제적 접촉을 벌여왔던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일본학회 같은것이 출범하지 못한 상황에 비교하면 일본의 한국학 내지 한국사 연구는 우리의 앞 발치 멀리에서 독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 사학의 원로로 꼽히는「하따다」(기전외·조선사 연구회장)씨는『한국에서도 일본의 정치·경제·문화 등에 대해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잘잘못을 가려내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방을 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고 한국의 일본 연구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인이 쓴 한국사는 이미 2권이나 되는데 비해 한국인이 쓴 일본사는 아직 한 권도 없다. 이 같은 학문의 불균형이 무역이나 정치 협상에서의 불균형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작년에 한일 양국의 수뇌 회담이 이루어지고 지난날 한국 침략에 대한 일 황의「사과」발언이 나옴으로써 두 나라간에는「진정한 의미」의 국교 정상화 길이 트인 셈이다. 1965년 두 나라가「법적인」정상화를 이룬지 20년의 세월이 흘러서였다. 두 나라가 약속이나 하듯 「신시대」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신시대」를 받아들이는 양국 정부나 국민들의 의식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신시대를 달리는 주자가 중반 지점에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쪽이 한국이라면 일본 쪽은 주자가 이제 겨우 스타트라인을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은 대일 문제들이 쉽사리 해결되리라고 속단하는 듯하다.

<"2중성 깨달아야">
일본의 관료들이 제나름대로 일가견을 가지고 꼼꼼하게 정책을 다루어 가는데 비해 한국 관료들은 일본이 어떤 의무를 지닌 특수한 외국이라는 감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재일동포 지문날인 제도나 일·배한간의「민간 교류」방침 및 일본에서의 배한 관계자(정치활동)에 대해서까지 한 일간의 인식차가 크다. 한국 폭이 지나치게 순수하다.
『근래에 들어서 일본인들이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이는 문화 자체가 이중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기 쉬운 상황에 있다.
과거 신도 의식을 주재하던 천황이 불교 생활을 하는거나 표면적으로 서양생활을 하면서도 내적인 일상생활은 일본적인 것으로 하는 것이 일본이다. 그것이 일본의 참모습이다』 고-다께다」(무전승즐·조도전대교수)씨는 설명했다.
그는『걱정스러운 것은 일본인들이 자신의 2중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일본의 2중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한국에의 경고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동경 우에노(상야)고등학교에서 일본사를 가르치고 있는「마쓰우라」(송포리정·43)교사는『역사 시간에는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를 비교해서 그 전래 과정도 가르치고 있다. 일본 교과서는 겉만 보면 새로운 것같지만 전전의 황국 사관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래서 교과서보다는 보충 수업 프린트를 많이 이용한다고 밝였다.
「마쓰우라」교사와 같이 독자적으로 준비한 교재를 통해 한일간의 바른 역사를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교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것도 최근의 일이다.

<여전한 황국사관>
현재 일본을 끌고가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패전 직후 배고픈 젊은 시절을 보낸 역전의 노장들이다. 이제 태평양에 다시 떠오른「부심경제항모」로서의 일본을 21세기에는 어떤 위치로 올려놓느냐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앞으로 2O년후, 일본의 주역이 될 젊은이들 가운데 일부가 이제 대한 경험을 넓히고 있다.
한국을 다녀온 일본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 대부분이 서로들 제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엘리트라고 생각하고 있는 반면 자신들은 이기주의에 국가 의식마저 희박해 서로간의 대화 진행이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일본은 아시아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선진국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그리고 인종차별 국가에서는 백인으로 대우 받는다. 일찍이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가려고(탈아입구)했으나 이제는 그대로 주저앉은 채 동북아·동남아를 앞뜰·뒤뜰로 삼아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세계 GNP 10%의 경제력을 가지고 동북 아시아의「평화와 안정」을 위해 리더 역할을 자청하고 있는 일본의 대한 반도 외교는 계속 우리가 주시해야 할 사항이다. 【동경=최철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