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300m 가는데 버스 6대, 한 층 가려고 승강기 잡아놔…특권부터 배운 초선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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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3층 로비에 마련된 초선(初選) 당선자 오찬장에서 건배사가 울려 퍼졌다.

의정 연수에 20명 지각, 20명 불참
오찬장선 “밥값 하는 정치인” 건배
오후 행사 때 졸던 이들을 깨운 건
스크린에 뜬 월급·수당 액수였다

“20대 국회! 끝까지! 초심으로!”

“초선! 변화!”

“일하는 국회! 밥값 하는 정치인!”

이날 오찬은 국회 사무처가 마련한 ‘초선의원 의정 연찬회’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당선자들이 환한 표정으로 와인잔을 들어올리며 건배사를 함께 외친 시간은 낮 12시30분. 이 시간부터 필름을 거꾸로 돌려보자. 과연 이렇게 멋진 건배사에 부합하는 행사였는지.

당선자들은 오찬이 열린 의원회관에 ‘의원 전용 출입문’을 통해 들어왔다. 건물 한가운데 통유리로 돼 있는 자동문으로, 언론이 “의원 특권의 상징”이라며 수차례 비판해 온 문이다. 민원인과 의원 보좌진은 그 옆에 한 명씩 들어가야 하는 작은 회전문을 통해서만 의원회관에 드나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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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사무처 직원들이 11일 초선 당선자들이 의원회관 2층 로비에서 3층에 마련된 오찬장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대기시켜 놓고 있다. [김현동 기자]

당선자들이 ‘특권의 문’을 통해 들어온 곳은 의원회관 2층 로비였다. 오찬장까지는 고작 한 층 차이. 하지만 국회 사무처는 엘리베이터를 3대나 잡아놓고 당선자들을 실어 날랐다. 더 높은 층에 있는 의원실을 찾아가야 하는 많은 민원인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초선 의원 의정 연찬회를 마치고 의원회관에 도착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오찬 직전까지 초선 당선자들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전·현직 국회의장·부의장들로부터 특강을 들었다. 강연에선 “정치의 폐단을 초선인 여러분이 앞장서 고쳐야 한다”(김원기 전 의장), “국회의원은 ‘높은 사람’이 아니라 중요한 사람일 뿐임을 명심하라”(이석현 부의장)는 등의 충고가 쏟아졌다.

이런 특강이 있었던 헌정기념관과 와인 건배사가 오갔던 의원회관까진 300m 남짓. 하지만 당선자들을 300m 실어 나르기 위해 국회 사무처는 6대의 대형 버스를 마련했다. 비가 온 것도 아닌 상황이니 누가 봐도 ‘과잉 의전’이었다.

이날 행사는 지각자가 속출한 가운데 시작됐다. 오전 10시에 의정연수원 측이 행사를 시작한다고 분명히 고지했는데, 초선 당선자 132명 중 90여 명만 행사장에 도착했다. 20명 정도가 지각을 했고, 나머지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개중에는 각 당에서 새로 꾸린 원내대표단에 들어가 일을 하느라 못 온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끝내 안 온 새누리당의 한 당선자는 불참 이유를 묻자 “지역구 복지관들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는 일정이 있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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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정치를 반복하지 말라고, 특권을 내려놓고 서로 경쟁하며 부지런한 정치를 하라고 20년 만에 ‘여소야대 3당 체제’를 출범시킨 것이 이번 4·13 총선의 표심아니었을까. 하지만 국회 사무처와 초선 당선자 모두 이런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고 있다고 보기 힘들었다.

이날 사무처는 오후 3시쯤 당선자들에게 ‘국회의원 수당 및 지원경비’를 소개하는 순서를 진행했다. 그 순간엔 오찬 이후 춘곤증에 시달리던 당선자들까지 일제히 자세를 바로 하고 전면을 주시했다. 연단 위 스크린에는 ‘일반수당 월 646만원-입법활동비 월 314만원-관리업무수당 등 월 71만원’이란 글자가 또렷했다.

글=남궁욱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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