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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비상벨 수리해야 해운·조선 사태 재발 막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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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해운·조선산업이 추락할 때 비상벨만 제대로 울렸어도 위기를 예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상선의 외부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이 지난 3월 10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의 결론은 “기업으로서 존속할 수 있다”였다. 그러나 보고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현대상선은 항로에서 벗어나 표류를 시작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외부감사를 맡은 안진회계법인 역시 올 들어 대우조선이 항로를 이탈해 본격적으로 표류하자 지난 3월 ‘회계추정 오류’라며 2조4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뒤늦게 공개했다.

이렇게 된 건 회계법인이 감시견으로서 울려야 할 비상벨을 울리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외부감사는 기업의 재무 상황을 검증하는 공공성이 큰 제도다. 그래서 외부감사는 공인회계사(CPA) 자격이 부여된 전문인력에게만 허용된다. 회사의 경영실적을 엄정하게 검증하라는 취지에서다. 이런 장치가 없으면 기업이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할 때 채무를 줄이고 수익성이 높은 것처럼 꾸민 분식회계가 판을 치게 된다.

분식회계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며 경제 질서를 흔들어놓는다. 회계법인의 감사 자료가 부실하니 이를 토대로 작업하는 신용평가와 증권사 보고서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대우조선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부실이 표면화되기 전에는 우량등급(A-)이었다. 이건 블랙코미디 아니면 사기극이다. 투자자에게 투자해도 좋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감사 자료를 기본 자료로 보고서를 쓰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역시 올 들어 한진해운·현대상선에 대해 ‘매도’ 의견을 단 한 건도 내지 않았다. 산업은행·수출입은행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대우조선에 자금을 대준 것도 이같이 비상벨이 고장 나면서다.

정부와 국회는 즉각 비상벨을 고쳐야 한다. “해당 기업이 정보를 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에 눈 감아선 안 된다. 벌금 몇 억원 내면 끝나는 솜방망이 처벌 규정으로는 회계법인과 기업의 짬짜미를 차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무 기관인 금감원과 금융위원회가 조속히 해법을 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