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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전략가들이 요즘 하는 네 가지 생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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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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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중앙일보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2, 3일 워싱턴에서 연례 한반도 세미나를 개최했다. 북한의 도전과 동북아의 권력 역학에 대해 한·미 전문가들이 시각을 공유하는 세미나다. 공식 행사 안팎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한·미 동맹의 굳건함에 대해 이론(異論)이 없었지만 양국의 대선과 북한의 핵무기·탄도미사일 개발 때문에 향후 몇 년간 더욱 가변적인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됐다.

한국 내 대북 전략 균열에 더해
한·미 간에도 틈이 생기고 있다
깊이 있는 북핵 전략 개발 위해
민간 차원 한·미 대화 확대해야

전문가들에게 주요 네 가지 테마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한국도 미국도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대비가 없다. 한국 측 인사들은 트럼프의 한·미 동맹 비판에 분노와 우려를 표시했다. 트럼프는 한국이 미군의 주둔과 안전 보장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수차례 주장했다. 그는 한국이 핵 개발을 할 수 있고 심지어는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미군 철수를 암시했지만 철수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언하지는 않았다.

한국 측 참가자들은 한국이 미군 주둔비의 상당 부분을 기여하고 있다는 것과 해외 한·미 작전을 강조했다. 이러한 사실을 미국 언론과 국민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현재까지 트럼프의 캠페인이 사실보다는 감정에 의지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선거일이 다가옴에 따라 각 후보의 입장에 대한 검증이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누구건 트럼프 정책의 고문역을 담당하게 될 사람은 기본적인 사실을 확실히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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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의 국제주의자들을 포함해 미국 참가자들은 트럼프의 부상에 대해 낭패감을 표출했지만 한·미 동맹의 견고한 토대에 대해 신뢰를 표명했다. 특히 북한이 워싱턴을 핵으로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는 가운데 치러진 미국의 여론조사 결과는 아시아에서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전향적인 역할과 한·미 동맹에 대해 탄탄한 지지를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미 의회건 싱크탱크건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트럼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게 없다. 한국 측 참가자들은 트럼프의 부상에 대한 미국 국제주의자들의 불안감을 아마도 느꼈을 것이다.

둘째,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에 대해 점차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 놀랍게도 일부 한국 측 참가자는 미국이 북한 문제에 보다 가시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그들은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보다 일방주의적(unilateralist) 접근법을 구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정은의 핵·미사일 실험 때문에 한국 내부의 의견차는 좁혀졌을 것으로 예상됐다. 예상과 달리 지난 2, 3일 회의에서 미국 측 참가자들이 듣게 된 것은 박근혜 정부의 입장과는 상당히 다른 전향적인 주장이었다. 특히 일부 한국 측 발언자는 중국의 주장을 상기시켰다. 미국이 핵 관련 대화와 병행해 평화협정을 위한 북·미 대화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국 측 발언자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한국이 단독으로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 측 참가자들은 대북 전략에 대해 별다른 의견차이가 없었다. 관여(engagement) 정책을 주창해온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정무차관은 북·미 외교가 미국·이란 합의와 같은 길을 밟을 수 없는 이유를 명료하게 설명했다. 셔먼은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지 않았다. 대신 어두운 논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한국·일본·러시아,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중국이 공동 전략을 개발해 더욱 어려운 단계에 진입한 북한의 핵 도전에 대응하는 집단적인 노력에 착수해야 한다.” 미국 공화당·민주당 참가자들은 전술 차원에서는 의견이 달랐는지 모르지만 셔먼의 판단에 근본적으로는 동의했다.

셋째, 대중(對中) 정책에 대해서는 아직 간격이 있지만 대일(對日) 정책에 대해서는 틈이 줄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에 대한 고려를 포함해 박 대통령이 북한 핵·미사일 실험에 강경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중국이 유엔 안보리 제재를 따르게 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 광범위한 의견 일치가 있었다.

동아시아에서 점점 더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는 중국의 행동을 어떻게 관리하는 게 최선인지에 대해 한국과 미국의 전략적 사고 사이에는 견해차가 있다. 한편 이번 중앙일보-CSIS 회의에서는 일본이 주요 논란거리가 아니었다.

넷째, 지금 당장 더 많은 비정부 전략대화가 꼭 필요하다. 미 국무부 소속의 한 인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패에 대해 빈정대는 농담을 했다. 하지만 그러한 북한 위협의 경시는 설득력이 없다. 한·미 양국이 대선 정국으로 치닫는 가운데 김정은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 내부, 그리고 한·미 간에 존재하던 합의에 금이 생기고 있지만 이에 대한 주목이 충분하지 않다. 대북 정책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점점 더 민간으로 옮겨갈 것이다. 대북 전략과 동북아 지역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아이디어가 절실하다. 중앙일보-CSIS 회의가 비정부 논의에 기여했지만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