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머리 따로 가슴 따로, 박태환 해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기사 이미지

장혜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

박태환은 2014년 9월 실시한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약물 양성반응을 보였다(결과가 공개된 건 2015년 1월이다). 국제수영연맹(FINA)은 그에게 인천 아시안게임 메달 박탈과 18개월 선수 자격 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 징계는 올해 3월 끝났지만 박태환은 올 8월 리우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 ‘도핑에 따른 징계가 끝난 시점으로부터 3년 이내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 규정 때문이다.

개막이 석 달도 남지 않은 리우 올림픽. 체육계에선 ‘박태환’이 뜨거운 이슈가 됐다. 징계 종료 후 복귀전이었던 지난달 동아수영대회에서 나쁘지 않은 기록으로 4관왕을 차지하면서다. 대회 마지막 날, 스승 노민상 감독은 무릎을 꿇은 채 “박태환을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박태환 건을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로 가져가면 이중처벌 조항이 부당하기 때문에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는 조언자도 나타났다. 유정복 인천시장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여론몰이에 앞장섰고 새누리당 등 정치권이 호응했다. 한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 결과 국민 70%가 박태환의 리우행을 찬성한다’며 거들었다.

박태환을 처음 취재한 건 그의 올림픽 첫 도전이던 2004년 아테네다. 편집국에서 TV를 통해 박태환의 부정출발 실격 장면을 보며 “어어~” 했던 생각이 난다. 4년 뒤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현장에서 박태환이 남자 400m 자유형 금메달과 200m 자유형 은메달을 따는 걸 봤다. 당시 감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또 4년 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만났다. 금메달 없이 은메달만 2개였어도 벅찬 가슴은 베이징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우리의 수영 영웅을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유정복 시장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박태환을 리우로 보내자”고 쓰면 쉬울 수도 있다. 그런데 머릿속 한쪽에서 ‘비토권’을 행사한다.

박태환 도핑의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재판을 들여다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쟁점도 도핑의 본질적 부분은 비켜 간 느낌이다. 사건 초기 제기된 수많은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다. 이중처벌 논란을 불러온 대한체육회 규정도 ‘왜 이제야 문제 삼을까’ 하는 생각에 맘이 편치 않다. 이 규정은 2014년 7월 만들어졌다. 체육계 얘기를 들어보니 도입 배경도 석연치 않다. 당시 한 도핑 전력 인사의 국가대표팀 복귀 문제가 시끄러웠다. 소속 종목에선 명망가였지만 대한체육회와는 껄끄러웠던 모양이다. 당시에도 이중처벌 얘기가 있었지만 그의 복귀를 막기 위해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박태환만 한 이름값이 없는 적지 않은 선수가 변명 한 번 못해 보고 이 규정에 따라 사라져 갔다.

수영선수의 전성기는 24세 전후라고 한다. 박태환은 만 27세다. 리우에서 메달을 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수영의 역사를 바꾼 박태환을 그냥 묻어 버리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슴과 머리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이 상황. 알파고라면 해법을 알까.

장혜수 JTBC 디지털뉴스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