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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제 공휴일을 도입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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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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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경제부문 차장

오늘(5월 6일)은 갑작스럽게 맞은 임시공휴일이다. 서울 올림픽 개막이나 월드컵 4강 진출, 광복 70주년 같은 명분도 없었다. 징검다리 휴일 대신 긴 연휴를 만들어 국내 소비를 진작시키겠다는 의도에서 마련됐다. 여행이나 휴식을 원하는 국민에겐 반가운 일이겠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선례가 있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 되면 정부의 임시공휴일 지정 여부에 관심이 쏠릴 것이다.

내년 5월엔 정부가 더 어려운 고민에 빠질 것 같다. 2017년 5월 3일(수)은 석가탄신일, 5일(금)은 어린이날이다. 내년 5월 4일(목)을 임시공휴일로 하면 5일 연휴가 된다. 게다가 내년 5월 1일(월)은 근로자의 날이다. 근로자의 날은 관공서가 쉬는 공휴일은 아니지만 근로자와 기업엔 휴무일이다. 만일 5월 2일(화)까지 쉬게 되면 9일간의 황금연휴가 생긴다. 내년에도 경기가 부진하다면 임시공휴일 지정 얘기가 또 나올 것이다.

그렇다고 내년에도 올해처럼 임시공휴일을 10여 일 앞두고 급하게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내년도 달력이 인쇄되기 전에 공휴일로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게 옳다. 아예 이 기회에 공휴일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 볼 만하다.

한국의 공휴일은 날짜 중심인 데다 음력으로 따지는 설·추석·석가탄신일이 있어 징검다리 휴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안정적인 휴일을 보장하기 위해선 날짜 대신 요일제 공휴일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 등 10명은 지난해 5월 ‘국민의 휴일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어린이날을 5월 첫째 월요일, 현충일은 6월 첫째 월요일, 한글날은 10월 둘째 월요일로 변경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11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상정돼 논의도 했다. 하지만 많은 국민이 날짜 중심의 공휴일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더 이상 진전을 보지는 못했다.

이웃 나라 일본은 2000년대 초 일부 공휴일을 월요일로 변경했다. 미국도 월요일로 지정된 공휴일이 여럿 있다. 현충일과 비슷한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는 5월 마지막 월요일이다. 공휴일이 월요일이면 3일 연휴가 안정적으로 보장된다. 미국의 쇼핑업체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세일 행사를 한다.

우리의 어린이날도 한때 요일제 기념일이었다. 1920년대 제정 초기 어린이날은 5월 1일이었고, 27년부터 5월 첫 번째 일요일로 변경됐다. 37년 일제에 의해 중단됐다가 해방 이듬해인 46년 5월 첫 일요일에 다시 행사가 열렸다. 이날이 5월 5일이었고 이후 어린이날은 그대로 굳어졌다. 유래를 살펴보면 어린이날을 꼭 5월 5일로 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3·1절이나 광복절(8월 15일)을 요일제로 할 수는 없겠지만 어린이날이나 현충일은 요일제로 전환해도 큰 무리가 없다. 이젠 효과적으로 놀고 즐길 수 있는 공휴일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됐다.

김원배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