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떨림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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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손을 가만히 두려고 해도 계속 떨리는 수가 있다. 또 손이 쉬고 있는 동안은 떨리지 않다가도 무슨 일이고 시작하려면 떨려오는 경우도 있다. 수저를 들어 국물있는 음식을 흘리지 않고 떠먹기가 힘들고 담뱃불을 붙이기도 어려워지며 단추를 끼고 빼는 것이 잘 안되고 글씨도 마음대로 써지지 않는다.
이러한 수전증이 있는 환자를 자세히 보면 손만 떠는 것이 아니라 몸의 다른 부분도 함께 떠는 수가 많다. 떨림증은 흔히 술을 많이 드는 사람에서 나타날뿐 아니라 약물중독환자나 파킨슨병과 월슨병, 또는 그밖의 뇌질환서도 나타난다. 떨림증은 마음 의지로 조정이 안되는 불수의 운동으로서 뇌안의 기저핵 손상으로 생긴다. 물론 몹시 불안하거나, 공포에 질려있는 경우도 몸이 덜덜 떨리고 히스테리 환자에서도 가끔 떨림증을 보게 된다.
파킨슨병에서는 손이 쉬고 있을때 매초 평균 3∼5회의 규칙적인 수전증을 보이는데 손을 움직이면 손떨림이 일시적으로 사라진다. 이때 수전증 이외에 가면을 쓴 듯이 무표정한 얼굴과 앞으로 허리를 구부린 구부정한 자세에 별로 몸을 놀리지 않는 과동상태도 아울러 보게 된다. 이 병은 중뇌부분에 있는 흑체세포가 파괴되어 그 부분과 연결되어 있는 선상체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의 분비가 현저하게 부족해져서 생긴다.
그래서 그 부족한 도파민을 엘 도파라는 약으로 보충해 주면 증상이 뚜렷하게 호전되어 좋은 치료효과를 보인다. 이것은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졌던 뇌안의 병이 생화학적 발병기전이 밝혀지는데 따라 고칠수 있게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파킨슨병은 우리주변에 많은 연탄가스중독이나 뇌염, 장기간에 걸친 정신질환 약물을 쓴 후에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월슨병은 대부분 20세를 전후해서 발병하고 손을 움직일때 떨림증이 심해지며, 또 떨리는 횟수도 매초 6∼8회로 더 빠르다. 이 병은 동대사의 이상으로 우리몸 특히 뇌안의 기저핵과 간 등에 동이 많이 침착해서 생기므로 치료도 그 동침착을 억제하거나, 제거해주는 약물을 쓴다.
손을 놀릴때 떨리는 증상은 그 밖에도 갑상선기능항진증이나 약물중독, 또는 흥분·불안상태에서도 볼수 있는데, 이때는 아주 빠르고 경미하게 떠는 것이 특징이다. 떨림증은 한가족의 여러명에서 보이는 수도 있는데 이를 가족성, 또는 유전성 떨림증이라고 한다.
가족성 떨림증은 이미 어려서부터 시작하기도 하지만 대개 그보다 훨씬 후에 어른이 되어 나오기 시작하여 일생동안 계속된다. 주위에서 눈여겨보면 더 떨게되고 술을 한두모금 마시면 묘하게도 없어지고, 술이 깰때쯤 되면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술은 많이 마시면 떨림증의 원인이 되므로 절대로 많이 마셔서는 안된다.
이상복 <서울대의대 신경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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