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4)제82화 출판의 길 4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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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앞회에 이어 일정하의 금서 제2기(1920∼1936년)의 양상은 어떤 것인가 알아보자. 이기간 조선안에서 금서처분을 당한 도서의 종수는 자그마치 1백7종으로 집계된다. 이시기의 특징은 1백57종의 금서목록 가운데 1백7종이 해외에서 발간되어 조선으로 반입된 도서였다는 점이다. 여기서 해외 발행지는 중국 각지, 즉 상해·간도·북평(지금의 북경을 말함)·안동현등과 미국의 뉴욕·샌프란시스코(대한인국민회)·노령(하바로프크부원동국출판부), 그리고 동경등 지역이다.
다음에 국내와 국외 발행 금서의 유형을 살펴보면, 국내금서는 유생들의 문집·족보·카프시인집·창가집·교과용 중학교 학습참고서 따위와 조선내 각지방에서 발행된 기독교관계 서적이란 점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이미 조선안에서 출판자유를 지킬 우리의 기개는 사전검열제도에 꺾이고 만 것을 능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국외, 즉 중국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한교지사들에 의하여 출판된 도서가 비밀리 조선안에 유입되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국내에 거주하면서 그들로부터 요시찰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걸핏하면 가택수색으로 예기치 않은 수모와 곤욕을 겪어야 했었다. 이무렵 해외에서 풍찬노숙을 이겨가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그 지사들의 처절한 모습을 상기하면서 그들이 쓴 금서를 살펴보면, 박은식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재만운동자간담회발행 『재만운동의 이예』 『동삼생한교정세』, 성도에서 발행된 『민족투쟁운동』, 상해도노월간사가 펴낸 『조선망국참사』, 상해한인애국단이 펴낸 김구저 『도왜실기』등을 들수 있다.
다음은 금서의 제3기(1937∼1941년)의 양상을 알아보자. 이 기간의 금서는 전체 36년간 중 가장 짧은 5년 사이지만 2백11종으로 수적으로 가장 많았다. 일제가 중일전쟁을 도발하면서 최후의 발악을 한 셈이다. 이때 목록을 보면, 국내발행과 국외 발행이 대략 반반인데, 국내 것은 영창서관 명문당 덕흥서림 삼천이사 삼중당 삼광서림 한성도서 북성당 창문당 홍지출판사 세창서관 춘추각 삼화당서림 천도교중앙관리원 동양대학당 근화사 광한서림 문화서림 대화서관 휘문의지 신구서림 조선지광 부문서관 등 당시 서울의 출판사가 출판한 도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특기할 일은 1937년도 한해에 60종, 1938년도 한해에 67종으로 이 양년에 무더기로 많은 책을 금서처분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일제의 조선문화·말살정책은 여기서 확실히 표출되었다고 할 것이다. 말하자면 조선문으로 기록된 책이면 금서가 되었다는 말로 이 무렵 출판의 암흑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 제2기·제3기를 통하여 국외 발행(1932년)으로 김구저 『도왜실기』와 국내발행(1932년)으로 삼천리사 발행의 『평화와 자유』란 금서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기로 한다. 『도왜실기』는 책이름이 말하듯 당시 침략자 왜놈을 잡아죽인 실기로서 왜놈에 대한 철저한 적개심에서 김구선생이 직접 쓴 것이다.
즉, 이 책은 김구선생이 한인애국단원인 윤봉길 이봉창 최여직 유상근의 의거진상을 쓰고 그 당시 외지에 발표된 여론을 수집하여 1932년 12월 중국어로 발간한 것을 4년뒤 엄항섭에 의하여 자료 보충으로 국문으로 역간된 것이다. 다음 채십상와 자유』란 금서는 삼천리사가 창립 3주년 기념으로 그동안 『삼천리』지에 게재되었던 논설등 53편을 모은 것인데, 당시 조선인의 지성을 대표한 인사들의 무게있는 글들이었다.
서재필 안창호 노백린 이승만 조만직 여운형 김병로 등 당시 조선의 젊은이들이 이분들의 이름만 보아도 가슴이 설레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다음에 「출판법」과 총독부의 「검열표준」이란 것을 알아보자. <정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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