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대표들 호텔의 3박4일|가져온 음료마시고 갈비등은 애써남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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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측 대표단 84명은 쉐라톤호텔 15, 16, 17층의 49개의 객실을 이용, 대표(7명)와 자문의원(7명)은 독방을, 수행원(20명)과 기자(50명)들은 둘이서 한방을 사용했다.
이종률북측단장등 대표들이 묵은 객실은 17층 딜럭스 스위트룸.
하루 숙박비는 7백달러(60만원).
l7층 객실(20∼30평)은 한강을 굽어 볼수 있는 침실2개가 있으며 반대편에는 휴게실인 라운지가 있고 욕실2개, 주방등이 딸려있는최고급 객실.
15, 16층은 자문위원과 수행원·기자들이 사용하는 표준형으로 하루 숙박료는 1백달러(8만5천원) .
이들은 30일 아침 떠나며각자의 방을 말끔히 정리했다.

<서부단장은 과묵>
○…북측대표단의 호텔종업원에 대한 태도와 시설물 이용은 대체적으로 세련된 편. 객실을 청소하는 여종업원을 마주칠 때면 『너저분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거의 꼭 건네곤 했다는 것.
호텔종업원에 따르면 이종률단장은 말씨·행동이 신중하고 세련됐으며, 서성철 부단장은 말수가 매우 적고 너무 신중해 종업원들도 매우 조심스럽게 접대해 왔다는것.
이 단장은 엘리베이터 안내원 김미숙양(24·객실예약과)과 친숙해져 『아가씨 또래의 딸이 있다. 수고한다. 학교는 어디 나왔느냐』며 자상하게 묻기도 했다는 것.
김 양은 『전문대학을 나왔으며 호텔엔 원래 엘리베이터 안내원이 없지만 북측대표들의 불편을 덜어 주기 위해 일하고 있다. 호텔에서 맡고 있는 일은 객실예약』이라고 설명.

<야식은 많이 주문>
○…룸서비스는 매우 적었던 편. 3박4일동안 과일·전복죽·조기정식·갈비찜정식·물냉면·불고기·땅콩등 모두 70인분 정도를 서비스 받았다.
17층에 머무른 대표단은 전혀 룸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고 15, 16층의 수행원·기자들의 주문이 많았으며 주로 방12시가 넘어서 야식을 시켰다는 것.
29일 저녁에는 11명이 호텔 신라만찬에 가지 않고 남아 일식집 석정에서 생선회를 시켜 먹었으며 순 한국식 고추장을 특별히 주문하기도 했는데 28일 밤에는 맥주8병이 룸서비스를 통해 들어갔다.
대표단과 자문위원들은 직접 북에서 가져온 용성맥주와 생수, 이름을 알수없는 붉은 색 음료수를 들며 각 객실에 비치된 냉장고 속의 음료수에는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
이와 대조적으로 수행원과 기자들이 묵은 15층에서는 냉장고속에 넣어둔 18병의 음료를 비우는 객실이 많았다.
한자문위원은 호텔종업원이 설악산 생수를 먹으라고 권하자 『한강물이 오염된 판에 이 물이라고 오염이 안됐겠소』라며 거절했다고.

<식욕은 왕성한 편>
○…북측대표단의 식욕은 매우 왕성한 편이였으며 한식을 주로 즐겼다고.
점심·저녁은 한측에서 주최한 오찬과 만찬으로 했으나 아침식사는 17층 뷔페 식당에서 들었는데 즐기는 메뉴는 된장찌개·갈비찜·갈치구이·산적·식혜·꼬리곰탕등이었고, 30일 북으로 뗘나던날 아침은 해장국과·전류·산적·생선조림·과일등을 들었다.
식사때는 대부분 밑반찬 그릇을 말끔히 비웠지만 갈비찜·숯불갈비등은 절반 가량 반드시 남겨 놓았다.

<방비울땐 당번남아>
○…북측대표단은 통신보안을 의식한 듯 구내전화조차 전혀 사용치 않았다.
자기들끼리 용무가 있으면 직접 상대방의 방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반드시 TV 볼륨을 건너방에서도 들릴 정도로 높이고 대화를 했으며 객실을 나올 때는 2∼3명이 짝지어 행동했다.
공식일정에 따라 대표단이 호텔을 비울 때는 꼭 5∼6명이 남아 객실을 지키기도.
대부분 하오 11시30분이 넘어 잠자리에 들었고 심지어 어떤 객실은 상오 2∼3시까지 불이 켜져 있었으며 기상은 다소 늦은 상오7시 전후. 다만 사진기자들이 상오 6시쯤 일어나 비디오 카메라로 호텔전경·한강모습을 담는것 이외에 아침산책은 전혀 없었다.

<옷깃 스치면 놀라>
○…북측대표단을 태우고 다니며 안내한 중앙고속관광 안내양 이 진주양(21)은 『1 호차에 탄 일행은 대부분 표정이 딱딱했다』고 전언.
이양이 웃으면서 안내방송을 하며 얼굴을 쳐다보면 눈길을 피했고, 도와줄 일이 없나 하고 차내 통로를 오가다 옷깃이라도 스치면 찔끔찔끔 놀라는 표정이었다는 것.

<「동무」대신 선생호칭>
○…그러나 70년대초 남북회담을 취재한 기자들이 탄2 ,3, 4호차 에서는 시종 부드러운 분위기.
북측기자들 안내양에게 『예쁘다』며 노래를 시키기도 했으며 노래가 끝나면 『인기가수』라고 추겨 올리기도 했다는 것.
3 호차에 탄 한 북측기자는 우리측 남자 안내원이 안내양을 가리키며 『평양에도 이런 미인이 있느냐. 가면 소개해 줄 수 있느냐』고 묻자 『이 정도 미인은 10km이내에 한 명씩은 있다』고 대답. 그들은 버스안내양 에게는 『미스 이』등으로 불렀으며 우리측 일행에게는 물론 자기들끼리도 「동무」라는 호칭대신 꼭「선생」이란 호칭을 사용 했다는것.

<상표떼낸 흔적 뚜렷>
○…북측대표단이 입은 양복은 일제 혼방이었고 와이셔츠도 마찬가지로 일본제품.
이들의 양복과 와이셔츠를 세탁한 이종길씨(41)는 『상표를 떼어낸흔적이 또렷했다』고 말했다.
세탁물은 그동안 양복이 30여벌이고 와이셔츠는 하루5∼6벌씩 세탁의뢰가 있었지만 러닝셔츠등 속옷은 없었다는것.

<모습프린트 신기한듯>
○…수원의 삼성전자를 방문한 북측대표단 일행은 시종 여유있는 표정을 지었으나 방대한 공장 시설이나 첨단 기술제품 생산과정을 보고는 다소 당황하고 놀라는 표정.
삼성전자 정재은 사장의 안내로 전자제품 전시장을 둘러본 이종률북측대표단장은 다른 수행원보다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으나 TV 프린터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TV화면에 비치고 프린트되어 나오자 신기한듯 한동안 쳐다보기도 했다.
또 한 북한기자는 컬러TV공장 로비에 진열되어 있는7백만 대째 TV를 보고 『이게 뭐냐』고 물었다가 『삼성전자에서 7백만 대째로 생산한 컬러TV를 기념으로 보관한 것』 이라고 대답하자 놀래는 표정.


○…북측대표단 일행은 시찰도중 사전에 서로 약속이나 한듯 근로자들의 봉급·근무시간·생산량·기숙사등 복지문제 등을 차례대로 질문했다.
이들은 삼성전자를 돌아보는 도중 모두 21명의 생산직 근로자들에게 직접 질문공세를 벌였는데 『노동자들의 노임이 얼마인가』 『하루 근무 시간은 얼마나 되느냐』 『저축은 얼마나 되느냐』는등 천편일률적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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