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잔소리하고 싶을 땐 안아 주세요, 상대 마음이 열린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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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음주 습관이 걱정인 50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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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만취해 퇴근한 딸에게 너무 화납니다) 50대 직장맘입니다. 큰딸이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딸의 직장과 제 직장이 가까이 있습니다. 덕분에 아침마다 딸이 운전해서 출근하니 한결 편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있어 출근길이 즐거웠습니다. 하루는 제가 야근을 하는 날이었는데 마침 딸도 회식이 있다고 해서 퇴근 후 집에 같이 가려고 딸의 회사로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딸의 동료들이 술에 너무 취해 흐트러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너는 그러면 안 된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잔소리했어요. 딸도 그러지 않겠다고 했고요. 그런데 어느 날 딸이 회사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와 집 주차장에 내리는데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고 입고 있는 옷에는 온통 토한 자국이 선명하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딸의 행동에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딸의 스마트폰을 정지시키고 한 달 동안 버스를 타고 다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화가 풀리지 않네요. 서로 마음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 일을 계기로 딸의 회식 문화도 바뀌었으면 좋겠는데, 스마트폰 정지가 최선책은 아닌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좋은 대안을 알려주세요.

A. (자꾸 혼내면 효과가 없어요) 상대방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전략으로 가장 일반적인 것이 직면적 소통입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직설적으로 지적해 자신의 문제에 직면하게 하는 것이죠. 오늘 사연처럼 스마트폰 정지 등의 벌도 함께 활용하게 됩니다. 이 방법은 마음에 부끄러움과 불편함을 불러일으켜서 그 부정적인 감정을 이용하여 행동 변화를 유발하는 것이죠. ‘너 이러다 나중에 뭐가 되려고 하니’라는 식의 말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여기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만들어 행동 변화를 더 촉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직면적 소통, 흔히 하는 말로 잔소리인데요. 효과가 없진 않습니다. 그러나 둘 사이의 관계는 멀어지기 쉽습니다. 아무리 나를 위해 하는 이야기라도 잔소리하는 사람을 보고 반가워하며 달려가는 이는 없습니다. 눈치를 보며 피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 마음의 반응입니다.

또 반복되는 직면적 소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가 떨어집니다. 내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려면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고 신뢰하고 마음을 열어 주어야 하는데 일방적인 잔소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잔소리는 그 자체가 체벌의 성격이 있어 벌을 받았으니 내 잘못도 탕감받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변화의 동기가 줄어드는 것이죠.

잘못한 것이 있는데 상대방이 그냥 지켜봐 주거나 안아줄 때 사람 마음은 복잡해집니다. 상대방이 나를 깊이 이해해 주는구나 하는 뭉클함이 찾아오고 신뢰감도 더 커집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있을 때 더 오픈하고 도움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안함도 더 크게 느낍니다. 그러다 보니 변화의 동기가 더 오래갑니다. 잔소리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자녀가 잘못했을 때 잔소리를 먼저 하고 안쓰러워 안아주는 것보다 먼저 넉넉한 마음으로 ‘다 커가는 성장통’이라며 웃으며 꼭 안아 주고 상대방이 마음을 열었을 때 ‘이런 건 바뀌었으면 좋겠다’란 메시지를 쓱 던지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사랑의 잔소리, 협박으로 들려

자녀들은 엄마의 잔소리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엄마의 잔소리는 무죄입니다. 잔소리는 자녀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에 자녀들이 시행착오 없이 살아가기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모성애이고 모성애는 인류를 지속시키는 본질적인 에너지입니다. 모성애는 생존의 에너지이기에 잔소리엔 모성애에서 출발한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실려 있습니다. 불안은 위기관리를 촉진하는 신호입니다.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가 환갑이 된 아들에게 길 조심하라고 하는 것이 모성애입니다.

아이에게 ‘너 생각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하며 야단친 적 있으신가요. 아이들은 생각이 많습니다. 어른만큼 표현하지 못할 뿐입니다. 자기가 속한 학교와 친구들에게 인정도 받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경쟁도 해야 하는데 뜻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속상합니다. 경쟁에 지쳐 돌아온 아이에게 가정이 힐링의 장소여야 하는데 우리의 가정들은 마치 태릉선수촌 같습니다. 꼭 안아줘야 할 엄마와 아빠가 코치가 되어 한 번 더 야단치니 말입니다. 엄마의 잔소리는 불안감입니다.

그러나 그 불안을 이야기할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 자녀들은 충분히 불안한 상태입니다. 표현을 못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부모가 그 불안을 막아주는 우산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보호막 아래서 자녀는 스스로 따뜻하게 사랑하는 기술을 배우게 됩니다.

잔소리는 분명한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내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소통의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잔소리는 효과가 좋지 못합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은 심리적 독립이라는 중요한 발달의 숙제를 이루어야 하기에 일단 잔소리에는 청개구리처럼 반응합니다. 그러면 부모는 아이가 비뚤어졌다고 느끼죠. 열심히 아이를 분석하고 적극적인 조언을 했건만 반대로 행동하니 속상합니다. 그러다 부모 자식 사이만 나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은 자유에 대한 욕구가 크기에 누군가 옳은 내용이라도 강하게 밀어붙이면 일단 저항의 심리가 본능적으로 일어납니다. 사랑의 잔소리가 상대방에겐 자유를 억압하는 협박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좋은 이야기를 하는데도 상대가 잔소리라며 듣기 싫어한다고 괘씸하게 여길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한 어머니가 요즘 잔소리를 줄였다며 자랑합니다. 전에는 독한 말투로 ‘아들 너 왜 이렇게 공부 안 해, 그래서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래’라고 했는데 요즘은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로 ‘아들 왜 이렇게 공부 안 해, 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살려고 해’라 말한다 하네요.

부드러운 말투는 잔소리가 아니고 설득력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후자가 더 열 받습니다. 말이라도 못되게 해야 같이 화라도 낼 텐데, 상대방이 부드럽게 이야기하니 화를 낼 수도 없고 울화가 쌓이게 됩니다.

변화에 대한 동기를 심어줘야

상대방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변화에 대한 동기를 살려 줘야 하는데 강한 잔소리보다는 열린 질문과 소통이 효과적입니다. 열린 질문이 무엇일까요. ‘아들 공부 열심히 했어, 안 했어?’는 질문이긴 하지만 닫힌 질문입니다. ‘아들 요즘 공부하기가 어때? 공부에 집중이 잘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가 열린 질문입니다. ‘여보 술 끊는다면서 어제 또 술 먹은 것 아니에요?’는 닫힌 질문입니다. ‘여보 술이 잘 안 끊어져요? 술을 잘 끊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가 열린 질문입니다.

열린 질문은 일방적 지시가 아닌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구조이기에 저항이 적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이야기에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술을 끊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술을 끊으려 해도 스트레스를 받으니 쉽지 않아’라 답하게 되고 술 대신 스트레스 풀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 결론은 대화를 통해 얻은 것이기에 내 생각이고 내 결정이기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장기 이식을 하면 신체에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식받는 것에는 거부감을 일으키는 게 우리 마음입니다. 열린 질문에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빨리 변화시키고 싶은 조급함 때문입니다. 그러나 변화에는 기다림이 꼭 필요합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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