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안보회의」의 저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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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르바초프」소련공산당서기장은 모스크바를 방문중인 「간디」인도수상에게 21일 「전아시아 안보회의」설립을 제의했다.
이런류의 집단안보 구상은 2차대전이후 소련대외정책의 기본노선이었다. 소련은 국경주변의 국가들을 집단안보기구로 묶어 자국의 안전을 도모하는것을 대외정책의 제1과제로 삼고있다.
첫번째 집단안보는 2차대전 직후 소련군의 독일공격과정에 점령된 동구에서 실현됐다.
이것은 점령군의 힘을 배경으로 소련에 복속하게된 동구 공산국가들만으로 구성된 바르샤바조약기구로 구체화됐다.
이 조약 가맹국들은 개별국가의 자주권보다는 국제적인 사회주의공동체의 이익이 우선돼야 한다는 이른바 「브레즈네프」독트린에의해 사실상 주권의 제한을 크게 받고있다.
68년 「프라하의 봄」때 바르샤바조약 5개국 군대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점령은 「브레즈네프」독트린에의해 합법화됐다.
소련 집단안보구상의 두번째 실현이 75년의 유럽안보협력회의다. 이것은 54년에 소련이 제의하여 20년만에 첫회의가 스웨덴의 헬싱키에서 열렸다. 이 기구에는 바르샤바조약기구 7개국과 나토조약기구 15개국, 비동맹중립 13개국등 미국·캐나다를 포함한 공산·반공·중립의 3개 진영 35개국이 참가했다.
이번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아시아 안보회의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고 있으나 반공자유진영이 제외됐다는 점에서 동구안보기구와 유럽안보기구의 중간형인것같다.
「고르바초프」는 83년5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일성과, 작년10월 방소한 몽고의 「바트문흐」수상에게 그의 아시아 집단안보구상을 피력한바 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한·미·일 3국이 군사적유대를 강화하여 「아시아판 나토」를 기도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항키 위해 아시아 국가들의 집단적인 안보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만일 소련이 아시아안보기구결성에 성공한다면 다음은 4번째단계로 중동안보기구 구상을 제시할것으로 판단된다.
그렇게되면 소련은 베링해협에서 무르만스크에 이르는 전국경선밖에 안전한 완충지대를 형성, 안보망을 완성하게 된다.
소련의 아시아집단안보구상은 69년6월 「브레즈네프」가 처음 제시한 아시아전략이다. 그는 국가간의무력불행사, 주권존중, 국경 불가침, 내정 불간섭, 호혜평등을 그 기본원칙으로 열거했다.
당시 인도는 이에 호응했으나, 중공은 그것이 중공포위전략이라는 이유로 강력히 규탄했다. 그밖의 아시아국가들도 대부분 냉담한 반응이었다.
그후 소련은 잠잠하다가 「체르넨코」때 잠깐 언급하고는 이번에 다시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번 「고르바초프」의 아시아 집단안보 구상은 우리의 안보에 직접 도전하는 전략임은 자명하다.
특히 「고르바초프」는 집권이후 북한과 월남에 군사장비지원을 강화하고 중공과의 관계개선에도 노력해 왔다.
이같은 최근의 북방세계의 움직임은 우리에게 국제적 안보유대의 강화와 대내적인 국민적 결속을요구하고 있다. 우리 모두의 경각과 대국적 행동이 절실한 단계임을 명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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