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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골프 칠 수 있는 분 많이 치고 기왕이면 국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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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지난달 30일 허창수 전경련 회장(왼쪽),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 주요 경제단체장들과 경기도 남여주CC에서 골프 회동을 했다. 현 정부 들어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가 공개적으로 골프를 친 것은 유 부총리가 처음이다. 이날 비용은 참가자들이 각각 분담했다. [사진 기획재정부]

지난달 30일 오전 경기도 여주의 남여주 골프클럽.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요 경제단체장들과 함께 나타났다. 오렌지색 니트와 베이지색 바지의 운동복 차림이었다.

주요 경제단체장들과 주말 골프
현정부 들어 고위급 첫 공개 라운드
해외 골프로 연 2조원 빠져나가
17만원씩 비용은 참가자 8명 분담

이날 유 부총리는 현 정부 들어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로서는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골프 라운드에 나섰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한무경 여성경제인연합회 회장이 한 조였다.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 김정관 무역협회 부회장,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조가 뒤를 뒤따랐다.

비용은 참가자들이 분담했다. 회원제가 아닌 퍼블릭(대중) 골프장인 이곳의 주말 라운드 비용은 그린피·카트피·캐디피를 합해 1인당 17만5000원꼴이다. 이어 일행은 인근 영릉(세종대왕릉)을 들른 뒤 한정식으로 식사를 했다.

유 부총리는 “골프가 아직 우리 상황에서 비싼 운동이긴 하지만 전 국민이 치지 않아야 할 정도는 아니다”면서 “(내수 진작을 위해) 칠 수 있는 분은 많이 치고, 기왕이면 국내에서 치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해외 골프 관광으로 빠져나가는 돈은 연간 2조원이 넘는다.

유 부총리는 경제단체장들과 4시간여를 보내면서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를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등 이런저런 경제 관련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다만 구조조정 등 구체적 현안과 관련해선 특별한 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곳이 (경제단체의) 회원사들도 있고 해서 언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회동은 박근혜 대통령이 ‘공직자 골프’에 대한 입장을 밝힌 지 나흘 만에 열렸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간담회에서 공직자들의 골프와 관련해 “좀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후 대한상의 측이 유 부총리에게 주말 골프 회동을 제안했다. 박용만 회장은 유 부총리와 경기고-서울대 동문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내수 살리기에 민관이 협력하자는 의미로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앞서 대한상의는 소비 촉진을 위해 “5월 6일 금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에 이어 이날 정부 ‘경제수장’이 직접 라운드에 나서면서 공직자 사회의 ‘골프 해금’도 공식화했다. 이명박 정부부터 이어진 사실상의 ‘골프 금지령’이 명확히 풀린 건 8년 만이다. 이 전 대통령은 물론 박 대통령 역시 직접 골프 금지를 지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수차례 비추면서 공직자들은 알아서 몸조심을 해 왔다.

박 대통령의 경우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위기 국면이 이어지던 2013년 3월 초 현역 장성들이 군 전용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것이 드러나자 “안보가 위중한 시기에 현역 군인들이 주말에 골프를 치는 일이 있었다. 특별히 주의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이어 7월 청와대 수석들의 자비 부담·휴일 골프에 대한 ‘완화’ 건의에 대해 “골프를 쳐라 마라 한 적이 없다”면서도 “그런데 바쁘셔서 그럴 시간이 있겠어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하지만 내수 살리기가 최우선 과제가 되면서 청와대의 기류도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에는 박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에 골프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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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부총리의 전임자인 최경환 전 부총리도 지난해 경제단체장과의 골프 회동을 추진했지만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에 무산되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박 대통령은 “내수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게 국민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공식적인 골프 해금에도 골프장에서 장차관 등 고위직 공무원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될지는 미지수다. 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자비로 친다고 해도 얼굴이 알려진 고위 공직자로선 눈치가 보이는 데다 당일 큰 사건이 터지기라도 하면 구설에 오르기 십상”이라며 “중요한 공식 행사가 아니라면 골프장을 드나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근·김준술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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