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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비리 정부는 뭐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금년 교육 주간에는 교육계를 위해 무슨 좋은 선물이라도 있으려나 하고 기다려봤더니 아니나 다를까「스승의 날」다음날부터 전국의 1천5백 사립중·고교들이 일제히 비리조사를 받게 되는 모양이다. 평준화정책이 실시된지 10여년, 공림화에로의 길을 달려오면서 숨이 턱에 받은 사학들이 더 이상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사방에서 아우성이었고 사회일반도 그것이 마냥 쏟아 놓는 엄살만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 최근에는 정부에서도 사학지원 대책을 강구한다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오곤 했는데 하필 교육주간을 맞아 벼락처럼 떨어진 것이 모든 사학들을 준범죄자 취급하는 비리조사 시달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역사에서 국민교육정신의 맥을 이어온 것은 관학이 아닌 사학이었다고 말해도 망발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조선조 때의 서원교육이나 서당교육의 전통까지 끌어대지 않더라도 10세기말 국운이 기울기 시작했을 때에 신지식을 가르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관학이 아니라 사학이 먼저였다. 서양선교사가 처음 세웠다는 배재학당보다도 3년 먼저 원산에서는 주민들의 노력으로 근대교육을 실시하는 학교가 세워졌었다.
1905년 을사조약 직후부터 합방직전까지 5년동안에 이른바 교육구국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일어나 전국에서 3천여개의 크고 작은 사립학교들이 생겼던 것에서도 우리나라의 사학정신의 맥이 어떤 성격인가를 말해 준다. 일제의 탄압으로 대부분의 사학들이 쓰러졌고 몇몇 소수의 학교들만이 끝끝내 살아남아 저항적 민족교육의 명맥을 지켜왔지만 그 때문에 광복이후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길러온 인재들에 의해 재빨리 교육의 골을 갖추고 있었다.
지난날 우리나라에서 사학교육은 거의 예외 없이 우국지사들의 애국사업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광복 이후 내 나라교육을 내손으로 할 수 있게된 뒤부터 사학의 겉모습은 번창했지만 오랜 사학의 교육정신은 점차 흐려져 왔다. 학교를 세워 운영하면 옛날처럼 우국지사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인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너도 나도 사학의 교주로 등장했다. 물론 갸륵한 뜻으로 사재를 털어 학교를 만들고 양심적으로 교육해 온 사학들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고 열화 같은 국민들의 교육열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가난한 국가재정형편에서는 새로이 생겨나는 사학들이 문자 그대로 애국사업일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분명히 아는 꺼림칙한 전력을 가진 인사들이 육영사업을 벌여 우국지사 행세를 하려들였던 예가 없지 않았더 것도 사실이다.
부패공무원 노릇을 했거나 모리배 짓을 했거나 간에 육영사업만 시작하면 지난 날의 부끄러운 과거를 덮어버릴 수 있을 뿐아니라 남들의 존경을 받는 교육자의 대열에 끼일 수 있다는 재빠른 계산밑에 학교사업을 벌이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던 때가 있었던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다.
사학이 교육계의 부조리의 온상처럼 취급되고 국민들의·불신을 받게 된 것도 그러한 몇몇 불순한 경영자들이 늘어나면서 부터였고 모든 사학들에 대한 정부의 감독과 규제가 공립학교 이상으로 강화되게 된 것도 그러한 일부사학들에 상식의 차원을 벗어나는 비리가 만연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나 이제는 모든 사학재단도 도산 직전에서 경영난에 허덕이게 되었고 건전했던 사학들에서까지도 떳떳치 못한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사채용에서 학교가 금품을 받는다거나 불법적으로 징수되고 찬조금이 강요된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학의 비리 때문에 사학운영에 대한 규제와 감독이 강화되었는데 오히려 비리는 더 노골화되는 결과가 나타냈다.
사학재단들은 그동안 사학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거나 평준화 정책을 시작할 때 정부가 했던 지원약속을 지키라거나 하는 요구에서는 보조를 함께 했지만 일부 사학 때문에 사학전체가 불신 당하고 손해를 보게되는 비리를 스스로 강독하고 단속하는 일에서는 보조를 함께 한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학전체를 싸잡아 혐의자 취급을 하는 문교당국의 관료주의가 온당한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일부 사학에서나마 비리가 가능했다면 그동안 그리도 서슬퍼렇던 감독기관의 행정력은 무엇을 했더란 말인가. 과연 지난날 모든 사학의 비리가 사학경영자들만이 추궁받아야 할 일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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