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사제관계를 생각한다.|그렇게도 힘겹고 초라했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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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5월15일은 스승의 날·오늘날 사도가 무너지고 제자들의 탈선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도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는 영원한 감격의 관계로 우리들의 기억에 남는다·스승이 돌이켜보는 잊을 수 없는 제자, 제자가 돌이켜보는 잊을 수 없는 스승을 통해 이 날을 기려본다·
전화를 통하여 밝고 앳되게 울려오던 목소리와는 달리 정작 우리집 대문안에 들어선 그의 얼굴은 이젠 의젓하게 틀이 잡힌 한 중년부인의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저를 모르실거예요. 저는 공부도 못했고, 아뭏든 전 그때 여러가지로 존재가 없는 학생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스무해도 더되는 세월을 넘기고 이렇게 나를 찾아온 옛날의 나의 학생, 그는 나와 마주 앉으며 우선 눈물부터 글썽거렸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한시도 잊은 일이 없어요. 어느날 선생님의 그 국어시간을‥』
바로 60년대초 대구 신명여고에서였다. 한심하게 가난했던 시절,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학생들이 간간이 섞여있던 교실에서 그때 나는 그들에게 『흥부전』 을 가르쳤다고 한다.『선생님은 그때까지 흥부를착하고 좋은 사람으로만 여기고 있던 저희들에게 놀부한테만 빌붙어 살려는 무능하고 치사한 사람, 밥주걱에 붙어 있는 몇알의 밥알을 얻으려고 다른 한족 뺨마저 내미는 형편없이 못난 사람으로 몰아붙이셨어요…』
부모를잃고 오빠와 함께작은 집에 얹혀서 지내던 그때 그에겐 그날 그 시간의 나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빠를 설득하여 작은 집을 나왔고 그래서 시작된 저희들 남매의 눈물겨운 생활, 선생님! 그걸 어떻게 다 이루 말할 수 있겠어요.
어떤 땐 너무 힘들어 오빠와 같이 마음껏 선생님을 원망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저는 이젠 이렇게 단단해졌어요.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했고요. 선생님이 아니셨다면 아마 저희는 지금까지 여전히 남들의 눈치나 살피며 그들의 선심에나 기대어 사는 가엾은 고아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가 들고 온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그와 보낸 몇 시간, 나는 내가 교사직을 택하여 어린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흐뭇하고 감격스러워 있는 대로 마음을 풀어놓고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도 고단하고 힘겨운, 그리고 또 초라하게까지 느껴지던 생활이었는데….
아! 그러나 이제 다시 시작한다면 그때와는 달리 그야말로 이제는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으련만. 김혜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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