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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파장 커지는 ‘정운호 구명로비 의혹’ 철저히 조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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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여성 변호사를 폭행하면서 촉발된 과다 수임료 논란이 법조계의 고질적 로비 의혹으로 확대되고 있다. 정 대표와 측근 인사들이 검찰 수사 단계부터 전·현직 법조인 및 외부 인사를 동원해 구명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이는 정 대표와 부장판사 출신인 최모 변호사가 진정과 고소를 하고 서로 폭로전을 이어가면서 터져 나왔다. 양측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종래의 법조 비리에 버금가는 폭발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 변호사 측에 따르면 정 대표는 지난 1월 서울구치소에 접견을 온 최 변호사에게 8명의 실명이 적힌 종이쪽지를 건네면서 “더 이상 로비를 하지 말아달라는 나의 말을 P씨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기 위해 메모지에 ‘빠져라’라는 표현도 썼다고 한다. 종이쪽지에는 부장판사와 검사장 출신 변호사, 성형외과 의사, 법조 브로커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변호사 측은 “네이처리퍼블릭이 협찬하는 미인대회에서 종이쪽지에 들어 있는 부장판사의 딸이 입상할 수 있도록 정 대표가 도와준 정황이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 측근이 지난해 말 항소심 재판부 재판장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재판장은 정 대표와 관련된 얘기를 듣고 사건을 다른 재판부에 다시 배당해줄 것을 요구했다. 법원은 “정 대표의 항소심 사건을 재배당한 것은 재판의 공정을 해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정 대표 측은 집요한 로비에도 불구하고 보석 결정은 물론 집행유예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화장품 사업으로 큰돈을 벌어들인 정 대표가 검찰 수사 단계부터 금품 로비를 시도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수십 명 규모의 변호인단 외에도 건설업자·의사 등 외부 인맥을 동원해 각종 민원을 했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당초 원심 구형 형량보다 낮은 징역 2년6월을 구형한 것이나, 보석 심사 때 미온적 태도를 보인 것도 의구심을 갖게 한다. 정 대표가 구치소에서 소란을 피워 징벌을 받게 되자 구치소 담당 변호사를 통해 해결했다는 최 변호사의 주장에서도 로비의 흔적이 묻어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법조 비리로 판사와 검사들이 옷을 벗거나 사법처리 되는 경우를 심심찮게 경험했다. 사법부와 검찰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재판과 수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관예우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각종 대책을 수없이 내놓았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고 체험하는 실상은 법조인들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법조계는 소득 양극화로 사회적 갈등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터져 나온 이번 사건을 ‘돈의 갑(甲)질’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