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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 열어 죽음의 고리 밝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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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들에 대한 검찰 조사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제는 사상자(검찰 기준 177명)를 가장 많이 낸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전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대표가 소환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과연 제조·판매 과정 에 대한 수사만으로 진상이 드러날 수 있을지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검찰은 신현우 전 대표를 상대로 2001년 화학원료 PHMG를 첨가한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을 개발하면서 PHMG의 유해 가능성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조사했다. 신 전 대표는 “유해성을 알지 못했다”고 부인했다. 검찰은 옥시 측이 서울대 등에 의뢰한 실험 결과 보고서를 조작하고, 출시 전 독일 전문가로부터 경고 e메일을 받고도 묵살한 단서를 잡고 조사 중이다.

문제는 영국계 다국적기업인 옥시 본사가 생산·판매 과정에 개입했는지를 제대로 밝힐 수 있느냐다. 관련 소송에서 옥시 측이 영국 유명 병원에 의뢰해 받은 분석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본사의 개입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옥시 본사는 호주에서 일어난 ‘진통제 폭리 사건’에 대해 100% 책임을 인정하면서 가습기 살균제에 대해선 한국 지사에 책임을 넘기는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국내 연구진의 보고서 조작 관여 의혹도 풀어야 할 대상이다.

특히 정부의 부실 대응 논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는 한국에서만 판매됐다. 카펫 항균제 용도로 개발된 PHMG는 미국에선 농약으로 분류돼 있다. 이런 물질이 호흡기와 관련된 생활용품에 들어갈 때까지 정부는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관련 부처인 환경부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의 허가·관리·감독 과정을 낱낱이 조사할 필요가 있다.

지난 5년간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제조·판매사의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처절한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어처구니없는 독성물질의 제조·유통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죽음의 고리’를 밝히지 않고는 비슷한 사건이 재발할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에 그칠 일이 아니다. 이제라도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어 모든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