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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효 끝난 인간문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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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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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를 둘러싼 무용계 파워게임은 반(反)양성옥파의 승리로 일단락된 듯 보인다. 양성옥(62)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태평무 보유자로 예고된 건 지난 2월 초. 하지만 비대위 구성-심사위원장 폭로-청와대 앞 1인 시위 등 반발이 이어지자 문화재청도 한발 물러섰다. 지난달 인간문화재 선정을 보류하며 원점 재검토를 시사했다.

“심사가 엉망”이라고 했지만 양 교수 지정에 반대한 이유는 따로 있다. 첫째로 족보가 의심된다는 신(新)무용 전력이며, 둘째로 “어찌 감히 어른을 제치고…”라는 반감이다. 이번에 태평무 보유자로 신청했던 이현자(80)씨는 20여 년 전 양 교수를 가르쳤다. 자칫 ‘스승이 제자를 모시는’ 형국이었다. 이현자 동정론과 뿌리 깊은 서열주의가 양 교수의 발목을 잡았다.

그럼 양성옥만 희생양을 만들면 해결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누가 되든, 어떤 방식이든 논란은 증폭될 게 뻔하다. 태평무는 그나마 4명이 나섰는데 이 난리였다. 각각 10명가량이 신청한 승무·살풀이의 경우 누가 되느냐에 따라 투서·비방 등은 걷잡을 수 없을지 모른다. 후폭풍이 두려워 아예 발표를 안 한다는 후문이다.

왜 이토록 인간문화재에 목을 맬까. 분명 예술혼과 명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랴. 우선 문화재로 지정되면 그의 춤은 대학 무용 커리큘럼이 된다. 국공립무용단에선 그 춤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군 면제를 결정하는 각종 콩쿠르대회 종목에서도 빠질 수 없다. 수천~수만 명의 인생을 좌우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문화재는 정년도 없는 종신제다.

돈도 빠질 수 없다. “공식적 전승지원비 월 130만원은 껌값”(성기숙 한예종 교수)이라는 지적이다. 인간문화재는 ‘보유자-전수조교-이수자-전수자’의 피라미드 구조다. 승무 이수자 김모씨는 “월 회비가 매달 30만원이다. 시험 칠 때는 의상비 200만원, 작품비 300만원이 기본”이라고 전했다. 이수 기간은 5년 안팎이다. 어느 무용과 교수는 “이수자 자격증을 따는 데 통상 3000만∼5000만원이 든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현재 종목별 이수자는 승무 228명, 태평무 213명, 살풀이춤 133명이다. 게다가 인간문화재 자녀 등은 의상실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연히 무대의상은 이들의 몫일 터. 가족까지 먹여 살리며 ‘금수저’ 집안으로 거듭나는 셈이다.

인간문화재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 기반한다. 당시는 일제시대, 6·25전쟁, 산업화 등으로 인해 전통이 소멸될 위기였다. 보존되고 계승하기 위해 인간문화재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50여 년이 지난 현재, 몇몇 분야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을 만큼 보편화됐다. 그렇다면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 오히려 명맥이 끊길 전통에서 인간문화재를 발굴하는 게 급선무이지 않을까. 이권화되고 권력화된 인간문화재를 더 이상 국가가 보호할 이유는 없다.

최민우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