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만 보는 도시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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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존 도시계획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방침이 김성배 건설부장관에 의해 밝혀졌다. 지금까지 도시계획선만 그어 놓은채 10년이상 사업을 시행하지 않고 방치된 도로 공원 등이 그 대상이라는 것이다.
좁은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이란 측면에서 잘못되거나 불합리한 계획을 수정하는 일은 불가피하다. 또한 도시계획 상의 각종 규제가 국민생활에 불편을 줄 경우 이를 덜어주는 것은 행정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금년들어 정부가 취하고 있는 잦은 계획 변경은 장기적인 도시계획 수행에 많은 차질을 줄 우려가 없지 않다.
도시계획은 국토종합 계획의 일환이므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수립되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최근 취하고 있는 도시계획 정책은 닐관성이 없이 너무 현재의 개발에만 치중되어 왔다.
도시계획에 대한 재검토 방침을 밝히면서 건설부는 강기 계획의 기본 목표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안에서 국민생활의 불편을 최소화 시키기 위한 보완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지만 과연 계획변경이 자로 재듯 거기에 그치고 더 이상 확대되지 않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앞선다. 이해 당사자는 물론 대다수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바로 문제가 있다.
국토개발 계획과 함께 도시계획은 1백년 앞을 내다본 강기적인 시각에서 수립되고 추진되어야함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계획이 확정되기까지는 전문가들에 의한 충분한 검토가 있었음에 틀림없는데도 걸핏하면 일부 수정, 전면 재검토가 가해지는 것은 행정의 일관성을 흐트러 뜨리게 되어 정부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깎게하는 요인도 된다.
가령 접도구역의 경우, 그 폭을 줄인것이 단기적으로 주변 주민들의 이익에는 도움이 되었을지언정 광역적 시각에서 보면 잘한 일 같지는 않다.
지금 당장이야 그런대로 지나겠지만 먼 훗날 현재 정해진 노폭보다 더 넓은 도로가 필요하다고 할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의 일은 그때 가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면 그뿐일까.
우리는 시민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중요한 정책들이 장관이 경질될 때마다 흔들리거나 변경된 경험을 갖고 있다. 정책을 바꿀 때는 그만한 사연도 있고 명분도 있겠지만 하찮게 여기는 변경이 시민생활에 주는 영향은 직간접으로 크다는 점을 유의했으면 한다.
또한 도시계획이 변경되면 주민이나 소유주들의 재산권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뿐아니라 교통·환경·교육등 여러분야에 걸쳐 많은 문제점들을 파생시킨다.
무엇보다 대도시에의 인구 집중을 막는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살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정책의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이런저런 사정들로 미루어 도시계획의 재검토나 변경이 건설부 단독으로 결정할 성질의 일은 아닐 것이다.
지방자치 단체나 관계 부처의 참여는 말할 것도 없고 주민들도 참여시키는 제도적 장치도 하루빨리 마련되어야겠다.
건설부가 도시계획을 재검토키로 한데는 특별히 딴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국민의 재산권과 관련되는 문제일수록 신중히 처리하지 못하면 자칫 엉뚱한 부작용이나 잡음이 생길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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