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먹지 말라면 더 따먹고 싶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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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학가의 서점에서 이른바 「불온서적」이 무더기로 압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착찹한 생각이 든다.
어느 신문에는 이번에 당국이 수거해 간 책의 일람표까지 보도해 주고 있다. 일종의 금서목록이다. 앞으로 이 목록에 오른 책들을 속새로 더욱 찾게되지나 않을지 궁금하다.
재미있는 것은 서양말에서 「금서목록」 이란 말은 「색인」이란 말의 어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찾아보기 쉽게 꾸며 놓은 목록」 이란 뜻의「인텍스」 (Index) 는 가톨릭교회의 「금서목록」(index librorum prohibitiorum) 을 줄인 말에서 나온 것이다.
산업혁명을 통해서 「상품」이 대량생산되기 앞서 「지식」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해 준 것이 인쇄 기술의 개발이 가져 온 커뮤니케이션 혁명이었다. 동양에서는 이미 13세기에 우리나라가 세계최초의 금속 활자본을 간행한 뒤를 이어 서양에서는 독일의 「요한·구텐베르크」가 1450년대에 활판 인쇄로 「42행성서」의 금속 활자본을 찍어냈다. 서양에서는 그것을 「매스 미디어 역사의 원년」이라 일컫고도 있다.
그때까지 그 많은 시간과 수공을 들여 필사해 오던 값진 책들을 금속활자로 손쉽게 복사,양산하는 길이되자 당시 사람들이 「검은 기술」 이라고 부른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은 금세 요원의 불길처럼 유럽의 전역으로 번져 갔다. 그 결과 15세기말까지 불과 50년 동안에 적어도 20여개의 유럽 도시에는 인쇄업소가 생기고 거기에서 찍어낸 책들은 이 기간중 3만5천종에 무려 1천만권(!)을 헤아리기에 이르렀다.
놀란 것은 책을, 그래서 지식을 독점하고 있던 교회와 대학이었다. 그래서 인쇄물에 대한 최초의 사전 검열제도가 로마에 앞서 「검은 기술」을 개발한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1475년 이미 쾰른 대학이 검열 조치에 착수했고 1482년에는 뷔르츠부르크와 바젤의 가톨릭 사제가 검열령을 내린다.
그로부터 5년후(1487년)에는 마침내 로마 교황청에서도 불온문서의 인쇄를 금지하는 교서가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조치들이 별로 큰 실효를 거둔 것 같지는 않다. 검열당국이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 책들이 그뒤에도 계속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온서적을 「찍어내는 것을 금지」 하는 조치에 이어 「읽는 것을 금지」 하는 조치가 뒤따랐다.
1540년 독일 황제 「카를」 5세는 최초로 읽어서는 아니 될 「금서목록」을 마련하였다. 그에 뒤이어 1542년에는 소르본 대학이, 1546년에는 루방 대학이, 1549년에는 쾰른대학이 저마다 그러한 「인덱스」를 작성하였다. 로마 교황청에서 처음으로 금서목록을 내놓은 것은 「바오로」4세 재위하의 1559년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불온서적은 계속 어디선가 찍혀 나오고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책에는 반드시 발행장소와 발행자 이름을 명기하라는 「임프린트」의 강요다. 비밀 출판을 방지하고 불온서적을 간행하는 업자를 쉽게 색출하기 위한 조치다.
참으로 묘한 것은 책에대한 금압은 마치 성에 대한 금압처럼 실효를 거둔다기보다 언제나 역효과를 내기가 십상이라는 사실이다.
성생활이 개방된 부부사이에 있어선 성이란 크게 신비스러울 것도 없이 일상성의 세계에 편입되어 버리고마는 것이라면 성생활이 억지되고 있는 미혼자·독신자에겐 성은 오히려 편집광적으로 추구하게 되는 강박관념이 되는 수가 있다.
어떤 면에선 금압하면 금압할수록 강화되는 것이 성의 매력이요, 성의 충동이다.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는 사람들보다 금욕주의자들 사이에 더욱 병적인 성의 도착증을 보인다는 것도그 때문이다. 소설가 「플로베르」는 『성 앙트완의 유감』 에서 그러한 금욕자의 성적인 망상의 세계를 그려 보여주고 있다.
따먹지 말라고 하면 더욱 궁금해서 따먹고 싶어지는 것이 「아담」과 「이브」이래의 인간의 본능이다. 에덴동산에서 하느님도 지키게 하지못했던 하느님의 금령을 지상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금령을 내려 성공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른다.
더욱 얄궂은 것은 성에 대한 금압이 사라져 버리면 사람들은 오히려 새로운 금단의 세계를 일부러 찾아고 금단을 깨뜨려 봄으로써 성충동의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모든 금지된 장난, 금지된 행동, 금지된 불온서적등이 그 경우에 기묘한 섹스 어필을 갖게된다.
나는 오래전에 뮌헨근교 「다하우」라고 하는 강제수용소를 시찰한 미국 어느 여교사가 유대인을 대량 살해한 가스실과 화장실을 둘러보며 무언지 설명하기 어려운, 그러나 강한 성충동 비슷한 것을 느꼈다는 기행문을 읽은 일이 있다.
가까이 있거나 그 안에 있으면 빛을 잃고, 숨겨 두거나 멀리 떨어져 있으면 매혹을 더하게 되는 것이 섹스요, 불온서적인가 싶다.
「붉은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동유럽 각국에서는 반 소비에트 자유화 운동이 꼬리를 물고 있는데, 붉은 군대의 발길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선 『코카콜라와 「카를 ·마르크스」의 아이들』 이 난동을 피우곤 한다.
6·25 이전에는 우리나라에도 얌전히 교모를 쓴 적지 않은 『「카를·마르크스」의 아이들』이 있었고 또 적기 않은 공산주의 서적들이 몰래 그들이에 읽히곤 하였다. 그러다 인민군의 남침으로 공산주의가 가까운 일상의 현실이 되면서 「카를·마르크스」의 아이들과 공산주의 서적들은 다같이 오랫동안 사라져 버렸다.
최근 당국에서 대학가의 불온서적을 압수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새삼 6·25도 멀어졌구나 하고 감회가 깊어진다.
그러한 단속이 실효를 거둘 것인가 하는 것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모든 자유로운 사고를 금압하는, 유일 사상을 선전하는 「이념서적」이 단속됨으로써 그걸보고 오히려 오늘의『블루진과 「카를·마르크스」의 아이들』이 서점에서 사라진 「금서」속에서 허망한 자유의 왕국을 그리는 「색인」을 찾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다. 최정호 <연세대교수·신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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