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몸 아닌 머리 쓰는 산업, 융합 인재가 미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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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호 12면

최정동 기자

20일 서울 서초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이하 aT) 지하 1층 북카페에서 만난 김재수(59?사진) aT 사장은 40년 가까이 농업 분야 한 우물만 판 농정 전문가다. 그는 1977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농림수산식품부 사무관을 시작으로 농업연수원장·농촌진흥청장 등을 거쳐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 차관을 역임했다. 2011년 10월 aT 사장을 맡은 이후엔 2014년 10월 첫 번째 연임(1년 단위)에 이어 지난해 11월 재연임됐다. 공기업을 포함한 국내 공공기관 가운데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다. 북카페도 2014년 aT 본사를 나주 혁신도시로 옮길 때 서울 시민이 농식품 관련 서적이나 자료를 손쉽게 볼 수 있도록 김 사장이 만든 공간이다. 그가 미래의 농식품 산업을 연구한 저서 『식품산업에 희망을 찾는다』 『한국음식 세계인의 식탁으로』 『농업의 대반격』 등도 책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김재수 사장은 최근 농식품 산업을 이끌 인재에 관심이 많다. 특히 2년 전부터 농식품미래기획단 ‘얍(Young Agri-Food Fellowship)’ 운영에 공을 들인다. 전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농식품 산업을 알리고 경험할 수 있도록 기업 탐방, 인턴십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현재 얍 회원수는 약 2700명에 이른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8개국에서도 558명이 활동하고 있다. 김 사장은 “현재의 농식품 산업은 몸(육체노동)이 아닌 머리가 필요한 분야로 양질의 일자리가 많다”고 말했다.


“상당수 대학생이 아직까지 농식품 산업 하면 소를 키우거나 논밭을 일구는 농부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현재 농식품 산업은 가공·포장·유통·수출처럼 생산 이후 과정에서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냅니다. 여기에 정보통신기술(ICT)과 생명공학(BT)이 더해져 첨단 산업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전북대 학생들과 함께 전북 부안의 닭고기 생산업체 참프레를 방문했는데 다들 공장 규모나 첨단 설비에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현장 경험이 쌓여 농식품 관련 업체에서 일자리를 찾는 학생도 늘고 있습니다.”


임대료 1억원 포기하고 창업 공간 마련 지난해 말 기준 졸업을 앞둔 얍 회원 581명 중 37%(215명)가 관련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강원대 경영학과 4학년인 최경영(24)씨도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취업에 성공했다. 그는 올해부터 남양유업의 분유제품을 베트남에 수출하는 나눔씨엔씨의 베트남 주재원으로 근무한다. 최씨는 “해외에서 경험을 쌓은 것이 취업까지 이어져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공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청년 창업가도 키우고 있다. aT북카페 근처엔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운영하는 식당 ‘에이토랑(aTorang)’과 꽃 카페 ‘에이티움(aTium)’이 있다. 두 곳은 합쳐 면적이 200㎡(약 60평)로 1년 전만 해도 연간 약 1억원의 임대료 수익을 올렸다. 김 사장은 임대 수익을 포기하고 청년 창업가에게 공짜로 빌려주고 있다. aT의 식자재·화훼 유통망을 활용해 창업 준비를 하라는 의도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김 사장이 직접 소개를 해준다고 나섰다. 먼저 찾은 곳은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학생들이 운영하는 에이토랑. 이들은 3주간 식당 메뉴 선정부터 시작해 조리, 식자재 관리, 서빙 등 식당 운영에 필요한 모든 과정을 경험한다. 수익금도 그들 몫이다. 한마디로 학생들이 에이토랑 주인이다. 홀 서빙을 담당하는 이혜원(22)씨는 “학교에서 책으로 배운 내용을 현장에 적용할 수 있어 좋다”며 “막연했던 창업에 대한 꿈에 한 발짝 다가선 기분”이라고 말했다.


에이토랑 앞집은 화훼 관련 창업공간이다. 지난달 7일 버려진 유리병을 활용해 화병을 만드는 ‘바틀샥’ 팀과 꽃과 인테리어를 결합한 ‘피네’ 팀이 이곳에 입주했다. 24개 팀을 제치고 선정된 두 팀은 6개월 동안 임대료 걱정 없이 창업 씨앗을 키울 수 있다. 피네를 운영하는 이재경(26·건국대 경영학과 4학년)씨는 “요즘 꽃 키우는 액자 등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을 구상 중”이라며 “이곳에서 쌓은 경험을 발판으로 6개월 후 실제 창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젊은 창업가를 지원하는 사업이 다른 공공기관으로 확대되길 바란다. 사회문제로 떠오른 청년들의 취업 문제를 푸는 것도 공공기관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전국 316개 공공기관이 기관·지역별 특성에 맞게 에이토랑·에이티움과 같은 프로그램을 발굴한다면 국내에 300개가 넘는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게 되는 셈”이라며 “생색내기 식으로 한시적인 인턴을 몇 명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중동 진출로 수출 100억 달러 목표 그가 인재 육성에 주력하는 또 다른 이유는 미래 먹거리 때문이다. 그는 “농과대 학생뿐 아니라 물리학·의학 등 다양한 전공자가 융합해야 농식품 산업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에고치만 해도 실을 뽑는 단계를 지나 인공 고막, 호르몬 개선제, 화장품 원료 등으로 변신해 미래 농업의 핵심 소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누에고치를 이용해 인공 고막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도 농촌진흥청과 한림대의료원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덕입니다. 농업 연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기능성 식품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옛말에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 몸을 고칠 수 있다’라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 때문에 다양한 약용작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영양이 뛰어난 농산물을 중심으로 기능성 식품을 만든다면 수출을 늘릴 수 있습니다. 지난달 도쿄에서 열린 식품박람회에서도 풋고추를 개량해 혈당을 낮추는 당조고추와 오메가3가 풍부한 들기름이 일본 바이어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농식품 수출 100억 달러를 넘어서는 게 김 사장의 중장기 목표다. 지난해 수출액은 80억34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2.6% 줄었다. 하지만 세계 2위 농식품 수입국인 중국에 대한 수출은 5% 늘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뒤로 진출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본격적인 중국 농식품 시장 공략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8월 공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중국 칭다오(靑島)에 1만4482㎡(약 4400평) 규모의 물류센터를 열었다. 이에 앞서 지난해 5월엔 중국 알리바바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티몰에 ‘한국식품관’을 개설하기도 했다. 이곳에선 기능성 음료, 호두 등 1552개 제품(지난해 말 기준)을 판매한다. 그는 “앞으로 칭다오 물류센터와 온라인 쇼핑몰을 연계해 유통 단계를 줄여 나갈 것”이라며 “그만큼 수출 경쟁력이 강화되면 한국 농식품에 대한 중국 소비자의 높은 관심을 감안할 때 폭발적인 성장도 기대할 만하다”고 말했다.


중국 다음으로 중동 시장도 눈여겨보고 있다. 세계에서 무슬림 식품 시장 규모는 약 1200조원(2012년 기준)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는 “무슬림 인구가 17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24%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aT는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4개국 순방을 계기로 아랍에미리트(UAE)에 아부다비사무소를 설립했다. 김 사장은 이곳을 기반으로 사우디아라비아·오만 등 인근 중동 국가에 한국 식품을 알리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염지현 기자 yeom.jihyeo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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