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 칼럼] 보릿고개서 '제철입국'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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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30분 "처녀 공(孔)이 터지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붉은 쇳물이 흘러나왔다." 누구랄 것도 없고 어디랄 것도 없이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관 제철소 착공 38개월20일 만의 개가였다.

고로(高爐)의 초경을 대한 느낌이 어땠느냐는 나의 질문에 갑자기 그는 눈자위가 붉어지고 목이 잠기는 것 아닌가. 상대는 포스코의 박태준 명예회장이고, 상황은 히스토리 채널의 '다시 읽는 역사 호외' 녹화 도중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이 30년도 더 된 일을 놓고 카메라 앞에서 눈시울을 적시다니…. 이런 '해프닝'은 녹화 후반부에서 또 한번 일어났다.

*** 방송 녹화 중 눈시울 적시다니

이해 7월 3일 포스코는 제1기 설비를 완공한다. 쌀이 없어 배를 곯던 우리가 '산업의 쌀' 쇠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보릿고개 가난을 등지고 '제철 입국'의 꿈을 이룬 것이다.

朴회장의 말에는 시종 어떤 '중압감'이 배어 있었다. 해외 차관이 막히자 대일 청구권 자금을 갖다 썼는데, 그래서 그는 제철소 건설이 "선조의 피의 대가"라고 했다. 이렇게 포스코 성공은 그에게 실패하려도 실패할 수 없는 사명이 되었으며, 그 결과 볼트 하나 죄는 일에서 종업원 자녀들의 교육까지 어느 한 가지도 소홀할 수 없었다.

시정의 소문대로 정말 부하 직원의 '조인트를 깐'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정색을 하고 그는 파일 하나를 잘못 박아 1천도의 쇳물이 쏟아지는 아찔한 경우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내가 아닌 누가 거기 있었어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무서운 확신이었다.

다른 하나의 중압감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의리와 충정이었다. 朴대통령은 무려 13번이나 포스코를 찾았고, 정부 간섭과 정치 헌금 요구를 막아달라는 朴회장의 요청에 친필 서명의 '종이 마패'를 내주기도 했다. 절대 신임이었다.

이제 시대가 변했다. 정부 주도의 '발전주의' 모형은 세계화 시류에 적합한 대안이 아니며, 전설 같은 '조인트 효과' 독려로는 노사 협력을 이루지 못한다. 그때는 '하면 된다'는 지도자의 선창이 있고 '해야 한다'는 국민의 분발이 따랐기에 모래펄에 철강 신화를 일굴 수 있었다.

朴정권의 '개발 독재'를 탓하면서도 그 열매를 거둔 '문민'과 '국민'과 '참여' 정부는 내일을 향해 무엇을 심었고 무엇을 뿌릴 것인가? 포스코의 성공이 빛날수록 나는 고도 성장의 연착륙 실패를 못내 아쉬워한다.

"포철…박태준 사장…3회 연재?" 간밤의 숙취로 몸이 찌뿌드드한 기자는 편집국장의 갑작스런 취재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쇠 만드는 회사가 이렇게 특별 취재를 가야 할 만큼 중요한 건가요?" 동행한 사진기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정래의 대하 소설 '한강'이 반어적으로 그려내듯 당시 우리는 숙취의 눈이나 의문의 고갯짓으로 포철 준공 소식을 대했을지 모른다. 소설 속의 기자는 즉시 개안하지만 어떤 예리한 관찰로도 30년 앞의 장래 계산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1백3만t 규모의 제1기 설비가 현재 2천8백만t으로 늘어나 포스코는 조강(粗鋼) 생산에서 세계 수위를 다투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세계 5대 철강 대국으로 올라서고, 이 저력 위에 세계 1위의 조선, 세계 2위의 가전, 세계 6위의 자동차 산업을 거느리게 되었다.

***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숱한 역풍

제1기 준공 30주년을 기념하는 지난 3일 포스코는 역사관을 개관했다. 과거의 고난과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먼저 변화에의 대비다.

산업혁명 이후 산업의 쌀이 돼온 쇠가 후기 산업사회에도 여전히 쌀이 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면 포스코는 새 출구를 찾아야 하며, 중국을 비롯한 철강 후발국의 추격과 선진국의 경쟁력 회복에 맞서 생존의 험로를 뚫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포스코는 숱한 외풍에-때로는 마지못해, 때로는 마지못한 듯이-시달렸으며, 최고 경영자의 진퇴마저 자유롭지 못한 때가 있었다.

朴대통령이 지어준 포항제철 상호가 날씬하게 포스코로 바뀌고, 국민 기업 간판은 '글로벌 초우량 기업'으로 변해 외국인 지분이 60%를 넘어섰다. 이런 현실에 어찌 서운함이 없으랴만 朴회장은 "더는 안되지요. 안되게 해야겠지요"라며 말을 마쳤다.

정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