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이고 백 번이고 대화해야죠" | "2∼3개월 안에 해결된다" | 내 잘못 크면 사퇴도 각오 | 이왕 당한 일이니 맞부닥쳐 결말 보겠다 | 현재 움직임은 임금 문제 이상의 차원으로 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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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우자동차 (부평 공장)의 파업 사태는 1주일째 타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농성 근로자들은 당초 요구했던 임금 인상폭을 되풀이해 주장하고 있고 회사측 역시 그렇게는 올려 줄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사태가 워낙 심각하자 김우중 대우 회장이 부평 공장에 나와 노조측과 직접 협상을 벌이고 있다.
22일 밤 현장에서 김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농성 근로자 대표들과 몇 차례나 만났습니까.
▲김 회장=모두 10차례 정도 됩니다.
-무엇을 요구해 왔고 회사측은 어떤 입장을 밝혔습니까.
▲김=당초 요구 사항이 기본급 18.7%와 수당 등을 포함해 모두 37.9%를 올려 달라는 것이었고 이에 대해 회사측은 생산 장려금 등을 포함해 14.18%선을 제시했습니다. 또 봉급 인상과는 별도로 무주택 사원들을 위해 본인이 30%만 부담하는 10∼12평 짜리 아파트와 미혼 근로자들의 기숙사 마련 등을 약속했습니다.
-진전 사항이 있습니까.
▲김=어제 만난 자리에서 2.3%를 더 양보해서 16.48%까지 올려 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근로자 대표들은 그렇다면 수당에 관해서 만은 재고해 보겠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래도 아직 상당한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김=그렇습니다. 계속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실마리가 풀리겠지요.
하루에 2번씩은 만날 계획입니다. 이미 일이 상당히 어렵게 번진 만큼 쉽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진 않습니다.
넉넉잡고 2∼3개월이면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왜 이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고 생각합니까.
▲김=불황을 겪었던 지난 3년 동안 이 회사가 낸 적자는 무려 7백억원에 달합니다. 직원들의 사기나 규율이 말이 아니었지요.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합작 선인 GM으로부터 경영권을 인수받아 대우가 직접 챙기기 시작했고 마침 자동차 경기도 살아나 재작년부터 흑자로 돌아서게 됐습니다. 이처럼 회사 경영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사원들의 복지면에 다소 소홀했던 게 사실입니다. 사원들 입장에서도 회사가 어려웠을 때는 참고 견뎌 왔던 점들을 회사가 좀 괜찮아지니까 떳떳이 요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겠지요. 그러나 결정적인 계기는 일부 강경한 근로자들이 기존 노조를 불신하고 대폭적인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지금의 파업 상태로까지 몰고 온 것입니다.
-처우 개선은 어떻게 할 복안입니까.
▲김=물론 금년뿐만 아니라 향후 2∼3년 동안 꾸준히 처우 개선을 해나 갈 생각입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대우자동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기업에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김=이왕 당한 일, 피하지 않고 맞부닥쳐서 결말을 보아야지요. 지금 피하면 나중에 더 크게 당할게 아닙니까.
말이 났으니 말이지 이 말은 꼭 신문에 써 주십시오. 내가 잘했다는 것 아닙니다. 이런 사태를 야기시킨데 대해 경영자로서도 정말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문은 뭘 하는 겁니까.
근로자들의 인상 요구가 옳다고 보는 겁니까. 그렇게 올려선 회사가 유지되기 힘듭니다.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신문이 지적을 해줘야지요.
사회적으로 내 잘못이 정말 크다면 언제라도 사표를 내고 그만둘 각오가 돼 있습니다.
-농성 근로자들은 대우자동차가 다른 자동차 회사들에 비해 임금 수준이 낮다고 주장하는데….
▲김=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회사는 주 48시간 작업인데 우리는 주 44시간으므로 이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습니다.
또 대우자동차의 월급이 경인 지역에 있는 동업사에 비해 낮지 않습니다. 다만 울산에 있는 회사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원래 울산 지역이 인력의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 전반적으로 임금이 높은데다 벽지 수당 등이 포함되어 그렇습니다.
-고졸 근로자의 초봉이 얼마나 됩니까.
▲김=보너스와 시간외 수당을 제외하고 13만 8천원입니다. 회사가 제시한 인상률에 따르면 앞으로는 모두 합쳐서 26만원이 됩니다.
근로자들은 하루 8시간 작업 기준으로 따지는데 지금 우리 형편으로 8시간만 일해서 되겠습니까.
-그동안의 대화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곤혹스러웠습니까.
▲김=어느 날 이야기를 하다가 『3만원이면 회장님 팁값밖에 안 되는데 뭘 그리 인색하냐』고 하더군요. 참 난감했습니다. 요컨대 문제의 핵심은 봉급을 몇 % 더 올려 주고 덜 올려 주고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태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습니까.
▲김=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동안 대충은 짐작했습니다만 이처럼 심각한 사태로까지 비화시킬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대치 상황이나 협상 과정을 보면 저들은 「프로」고 우리는 「아마추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로자들의 농성 방법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입니까.
▲김=딴것은 몰라도 임금 인상 문제를 이슈로 내걸자 초기 단계에 많은 근로자들의 호응을 얻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숫자도 줄고 매우 심한 태도로 나오고 있습니다. 만약 이들의 요구가 슬로건대로 임금 인상 만이라면 쉽게 해결되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움직임으로 봐서는 임금 문제 이상의 차원으로 비화되고 있기 때문에 걱정입니다.
-뾰족한 대책이라도 있습니까.
▲김=우선은 계속 대화를 시도해 나가는 수밖에 없지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만나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정부 당국에 요청할 사항은 없습니까.
▲김=대우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스스로 해결해 나가겠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사회 전체가 제자리를 찾아가지 않는 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문제는 상대적인 빈곤 감입니다.
90%의 다수를 10%의 소수에 맞춰 끌어 올 수만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우리 경제 능력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결국 10%의 리딩 그룹을 90%의 다수 족으로 접근시키도록 노력해야지요.
어쨌든 이번 일을 통해 기업인으로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솔직이 말해서 이처럼 상황이 절실했으니까 비로소 머리를 짜내 가며 매달리게 된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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